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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적, 족보, 일기 이야기 (역사인구학)

생활인으로서의 조선 사족, 그리고 일기

by 日莫途遠 2026. 8.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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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기를 읽으면서 드는 생각은, 

당연한 이야기지만 조선 사족 역시 우리와 마찬가지로 생활인이란 점이다. 

그들 역시 집안 살림 걱정을 했고,

그가 걱정을 하지 않으면 주변에 누군가 (백프로 그 집 마님이다) 그 역할을 해서, 

사족이라고 먹고 살아야지 않겠는가? 

오늘은 무슨 수입이 있었고, 내일은 무슨 지출을 해야 하고, 

(이것이 조선시대에는 선물의 형태로 나타나는 시기가 아주 아주 길다)

꼼꼼히 기획하고 관리해야 했고, 

그러고도 남으면 책을 봤는지 술을 먹었는지 모르겠지만, 

우리와 마찬가지로 그들도 우리처럼 생활인이었다 할 것이다. 

조선시대 사족하면 누구나 도학자, 소학동자 등 

사족들이 스스로를 그렇게 봐주기를 원했던 이미지를 떠올리는데, 

이는 우리 현재의 세상에도 평생을 공부만 빼고 다 하고 돌아다녔던 이들도 

죽을 때가 가까와지면 나를 학자로 불러다오, 나를 교수로 불러다오 하고 갑자기 코스프레 하는 것과 같으니, 

이런 조선 사족들 이미지 조작에 우리까지 가담할 필요는 없겠다 하겠다. 

조선시대 사족이 대대로 이어지는 데 중요한 것은 

학자로 대성하는 것이 아니다.

사족으로 번영하는데 학자연하는 것이 중요할 것 같지만, 

현실의 조선사회에서 사족들이 대대로 이어지는 것은 결국

그 집 재산, 그집 땅, 그 집 노비의 숫자였다는 점을 우리는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조선시대 학자로 대성했다고 해봐야 어차피 문집을 보면 알겠지만, 

이 사람 한 이야기나 저 사람 한 이야기나 별 차이도 없고, 

근대적 지식인의 선구자로 지목받는 사족들도 주장하는 이야기를 보면, 

한참을 들여다 봐야 그런듯 아닌듯 한 모호한 주장 내지는

절대로 그런 현실의 구현은 불가능할 듯한 황당무계한 주장이 대부분이니, 

우리가 생각하듯 조선의 사족들로 번영하는 것은 

대학자가 되어 비로소 가능한 것이 아니라, 

관직과 재산이 만들어 내는 권력과 이를 통한 학자, 문사로서의 코스프레-. 

이것을 통해서만 가능했다 할 것이다. 

조선시대 솔직하게 쓴 일기는 이래서, 

조선왕조 실록, 승정원 일기만큼이나 그 시대를 바로 보는데 있어서 중요한 것이고, 

죽고 나서 내가 이렇게 대단한 놈이라는 것을 위장하기 위해 만든

문집보다 훨씬 위대한 저작이 되는 것이다. 

수백 년이 지나면 오늘날 무슨 장관 무슨 자리 했다는 이들의 적당히 위조된 회고록보다, 

평생을 열심히 살다간 이들의 다이어리 수십년치가 국보로 될 가능성이 높은 것은 바로 이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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