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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문화 이모저모

서각을 푸는 사람들

by 세상의 모든 역사 2019. 12.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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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전에 내 고향 김천에선 똥을 푸는 일을 '서각을 펀다[혹은 푼다]' 하면서, '서각'이 도대체 무어냐 물었더니 모두가 꿀먹은 벙어리였다. 내 고향에선 뒷간을 가리키는 명사로는 '통시'가 압도적이었으니, 그럼에도 이 통시에서 똥오줌을 퍼 내는 일을 희한하게도 '서각을 펀다'라고 했으니, 이 경우 '펀다' 혹은 '푼다'라는 말이 액체를 바케스 같은 기구를 이용해서 퍼 올리는 일임은 의심할 나위가 없거니와, 통시에서 이 일을 할 때 도구는 딱 두 가지가 필요한데 하나는 '똥장군'이요, 다른 하나나는 '똥바가지'였다. 


익산 왕궁리유적 백제화장실



이 일이 우리 집에서는 말할 것도 없이 선친 몫이었거니와, 이 똥장군 생김새는 다시 말할 나위가 없겠고, 똥바가지로 퍼서 똥장군에 넣은 다음에, 그 주둥이는 대체로 짚풀로 막아서는 그걸 지게에 지고서 밭으로 나가 거름으로 뿌렸으니, 선친은 언제나 이 일을 서각을 펀다고 했다. 


익산 왕궁리유적 백제화장실



따라서 '서각을 펀다'는 말은 곧 '통시를 펀다'는 뜻이어니와, 그렇다면 '서각'은 요즘은 화장실이라는 말이 압도로 대체하는 '통시' 그 자체이거나, 그에 담긴 내용물을 말함이 문맥으로 보면 분명하다. 


내가 언제적인지 조선후기 남인의 재야 오야붕을 자처한 성호星湖 이익李瀷(1681~1763)의 글들을 모은 《성호전집星湖全集》을 읽어내려가다 그 권 제49권가 수록한 도보서稻譜序, 곧 도보에 대한 글 혹은 책에 부친 서문에서 그것을 해결할 실마리를 찾았으니,  


그리고 지금 세상의 벼슬이 없는 선비들을 생각해 보니, 그들의 말은 세상에 보탬이 되기에 부족하고 행동은 백성을 가르치기에 부족하며, 독서하고 도를 논할 때에는 터무니없는 망상에서 벗어나지 않으니, 그들이 먹는 곡식 한 알과 그들이 걸치는 실오라기 하나도 분수에 넘치는 것이 아님이 없다. 그들에게서 쓸 만한 것은 똥과 오줌뿐이다. 똥과 오줌이 비록 지극히 천한 물건이지만 이것으로 밭을 가꾸면 지극히 귀한 곡식을 얻을 수 있으니, 속담에 이른 바 “똥오줌 아끼기를 세간보다 더한다.”라는 말이 빈말이 아니다. 그러므로 사람이 거처하는 곳에는 반드시 서각西閣을 두는데, 서각이라고 하는 것은 동쪽의 사당祠堂에서 멀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가을과 겨울에 분뇨를 모았다가 봄과 여름에 시비施肥하여 수고로움을 다하는 것은 흉년에 굶주려 죽지 않기를 바라는 것이니, 이것이 어찌 자신의 집안을 구제하는 넉넉한 계책이 아니겠는가. (ⓒ 한국고전번역원 | 양기정 (역) | 2011) 


저 대목 원문은 아래와 같으니 


是以居必有西閣。西閣者所以遠乎東祠也。


이를 보면, 성호는 서각西閣이라는 말을 동사東祠라는 말과 대비해서 썼음을 본다. 


왕궁리유적 출토 뒤닦이용 측주厠籌



물론 서각에 대한 성호의 설명이 충분한 근거를 갖춘 설명 혹은 해석인가 하는 데 대해서는 이론이 있을 줄로 안다. 이른바 민간어원설일 가능성도 내치지 못하기 때문이다. 다만, 어린 시절 '서각을 펀다'는 말을 자주 들으면서도, '서각'이 대체 무엇인가 하는 데 대한 의문이 있었던 나로서는, 서각이 성호 시대에도 사용되었으며, 그 의미가 화장실 혹은 통시를 의미했다는 사실 자체가 중요하다. 서각은 화장실을 의미했던 것이다. 


더불어 이로써 우리는 성호시대에 화장실은 대체로 동쪽에 마련하는 사당에 견주어 그 맞은편 먼 곳에다가 설치하고자 했음을 엿본다. 물론 이 위치는 집안 사정에 따라 왕청 다르고 저것도 있는 집안 얘기라는 점에서 저 말을 신주단지 받들듯 할 필요는 없다고 본다. 


터키 에페수스 공중 똥간



덧붙이건대, 이는 기호철 선생 부연이기도 하거니와, '통시'라는 말에 대한 해석 시도도 있었던 모양이니, 예컨대 《봉사일본시문견록奉使日本時聞見錄》이라는 데서는 일본의 사정을 기록하며 "뒷간에 ‘동사東司’ 라고 쓴 종이 한 장을 붙였는데 왜음은 동東과 통通이 같은 음이니, 우리나라에서 뒷간을 가리켜 ‘통사通司’ 라는 것을 왜음으로 잘못 좇은 것 같다."라고 하였습니다. 즉, 동사東司의 동이 우리말 똥과 비슷해서 동사東司라고 했다"고 한다. 그에 대해 기씨는 "얼핏 보면 그럴싸하다. 하지만 동사는 東廝와 같은 말로 변소를 가리키는 한자어다"고 했으니, 민간어원설로 본 것이다. 


군인들이 사용하는 철모를 재활용한 똥바가지


똥장군



화장실 얘기 나온 김에 또 하나 붙이자면, 사다함 집안 얘기다. 


《화랑세기》 5세 사다함 전에 비량공이라는 사내가 법흥왕 후궁인 벽화왕후를 사모해서 왕후가 똥간에 갈 적마다 따라가서 거기에서 꿍꿍짝꿍꿍짝을 해서 아들을 낳으니 그가 바로 사다함의 아비 구리지仇利知라고 한다. 일본서기인가 고사기를 보면 고대 일본에서도 똥을 '구세kuse'라고 했다는 사실이다. 지금도 일본어에는 쿠세라는 말이 악취를 의미한다고 알 거니와, 이는 고대 한국어 똥간에서 유래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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