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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년의 연구

선명한 경복궁 담장 안 밭둑

by 신동훈 識 2026. 5. 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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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6년 김한용이라는 분이 비행기를 타고 서울 상공을 날며 찍은 사진이라고 한다. 

경복궁을 효자로 쪽에서 남쪽으로 비스듬히 보며 찍은 사진으로 

정면에 경회루가 보인다. 

이 사진을 보면 경복궁 궁장 안에 밭이 보인다. 

조선시대 경복궁이 재건되기 이전

영조가 청계천 준설을 할 때 기록을 보면, 

서울을 둘러싸고 있는 산이 민둥산이 되어버리고, 

경복궁 자리가 사람들이 몰래 들어가 경작을 하는 통에 

비만 오면 토사가 쓸려 내려가 청계천에 쌓이니 

하상이 높아져 우기에는 서울이 비에 잠긴다는 기록이 나온다. 

1966년까지도 경복궁 궁장 안에는 저렇게 밭이 있었으니, 

경복궁 중건 전에야 말 할 것도 없겠다. 

조선시대 개록을 보면 경복궁 궁내 폐허가 된 지역은 물론

동십자각까지도 밭이 있었다고 되어 있다. 

경복궁 일대가 관리가 안되고 경작지로 바뀌는 것이 

서울 시내 주기적 범람을 낳았고, 

그 바람에 필자의 연구팀이 세종로 발굴때 수습한 시료에서

회충과 편충알을 많이 발견했었으니, 

그 이유를 조선시대 빈번한 홍수덕에 세종로가 오물로 뒤덮이는 것이 여러번 있었다고 추정한 바 있었다. 

요즘은 이런 이야기해도 뭐 그러려니 하고 큰 논란이 없지만, 

그때 당시 블로그 김단장께서 서울에 분뇨가 뒤덮였다고 제목을 뽑는 통에 

그 기사에는 우국지사들의 비난 댓글이 이어진 기억이 있다. 

항상 하는 일이지만, 전통시대 대도시, 특히 한 나라의 수도 정도 되면

당시 토양에서 기생충란이 안나오면 더 이상한 것이겠다. 

지금도 조선시대 시료에서 기생충란을 찾은 것이 

뭐 그렇게 국가적으로 수치가 될 만한 사건이었을까 의아할 뿐이다만-. 

여담이지만 필자 연구진이 지방의 어느 고도 유적에서 기생충란을 찾아 국제학술지에 보고하자

그 도시 지자체 시장 되는 분이 불쾌해 하더라는 소문도 전해 들은 적이 있다. 

관광사업에 방해가 된다는 이유였는데, 

지나가고 나서 하는 이야기지만 고고기생충학도 우리나라에서 순탄하게 진행된 것만은 아니었다. 

이거 왜 하느냐는 질문부터 시작해서, 

결과가 잘 나와도 욕먹는 연구라

이제 20여년의 결과가 마무리되는 단계에서 회고하면 새삼스러울 뿐이다. 

요즘이나 되니까 고고과학을 키워야 한다고 이야기 해도 씨알이나 먹히지

불과 십년 십오년 전만해도 고고과학 하면 그게 뭐냐고 묻는 사람이 태반이고, 

욕이나 안먹으면 다행인 시절이 있었다 (완전히 그 시절이 역사 저편으로 간건지는 확신 못하겠다)


사진에 보이는 밭자리가 지금은 온데 간데 없어졌다. 위성사진에는 뭔가 발굴하고 있는 지역만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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