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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EWS & THESIS

시종 유쾌했던 신형식 선생

by taeshik.kim 2023. 5.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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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일 타계 소식을 전한 신형식申瀅植 선생은 내가 만난 이래 30년 정도를 간헐적으로 지켜봤지만, 시종 유쾌한 사람이었다. 물론 그렇다 해서 그의 삶이 유쾌하기만 했겠는가? 하지만 언제나 그는 웃는 표정을 잃지 아니했고, 언제나 웃는 얼굴로 이야기했다. 

선생을 모시고 한 때 노래방도 자주  갔고, 중국 여행을 동행하기도 했다. 

1957년 충주사범학교를 졸업하고 1961년 서울대 사범대학를 마친 그는 결코 요란스럽다 할 수는 없겠지만, 제도권 역사학이 보장한 꽃길만 걸은 사람이다. 무엇보다 성격이 모나지 아니해서 누구랑도 잘 어울렸으며 그런 까닭에 이렇다 할 적이 없었다고 기억한다. 

그렇다고 야물딱지게 자기 이익만을 챙기는 그런 모습을 보여준 사람으로는 나는 기억하지 않는다. 언뜻 허허실실한 삶을 산 듯이 보였으며, 이화여대 교수로 오래도록 봉직하며 교수로서, 또 한국고대사학도로서 누릴 것은 다 누린 사람이다.

1968년 한국외대 전임강사를 시작으로 1977 성신여대를 거쳐 1981년 이대로 옮겨 2004년 정년퇴직까지 했으니 이보다 더 순탄한 삶이 있겠는가?
 

2015년 교과서 파동 당시 신형식 선생. 오른쪽은 김정배 선생이다.

 
 
80년에서 조금 모자라는 그의 삶에서 언론지상 마지막을 장식한 사건이 박근혜 시대 이른바 국정교과서 파동이라, 역사학도라면 누구나 어용이 될 수는 없다는 이유를 달아 그 반대에 동참하며 그에 참여하는 일부 역사학도를 향해서는 돌팔매질을 해댈 때 그는 실로 용감무쌍하게도 그 집필 참여를 선언했다. 

그 참여 집필진 대표로 활동한 최몽룡 교수가 불미스런 일로 위원장 같은 자리에서 낙마하자, 그는 자연스레 그 얼굴로 부각하기 시작했으니, 김정배와 더불어 그는 그 참여진 대표자로 인식되기도 했다. 

진보와 보수 양극단으로 흔히 분류하는 한국사회 정치지향에서 그는 분명 보수에 가깝지만, 그렇다 해서 그가 저런 욕을 먹을 만치 극보수였는가 하면 그렇지도 아니해서 온건 성향이 상당히 강한 사람이었고, 더 솔직히 말하면 그가 특정한 정치지향이 있었을까를 나는 의심할 정도다. 

그는 그 연배에 어울리게 적당한 보수였고, 적당한 기득권층 일원이었으며, 적어도 학계에서는 이렇다 할 권력을 잡았다고는 하기 힘들지만, 그렇다 해서 그 주류에서는 단 한 번도 밀려난 적이 없는 사람이다. 그의 이런 처신을 물론 삐딱하게 바라볼 수도 있지만, 나한테는 그냥 좋은 이웃집 아저씨였다. 

그는 언제나 나한테는 "김 기자 나 외로워요"라는 말을 되뇌이곤 했으니, 그렇다 해서 그렇게 말하는 그 얼굴이 찡그러진 적은 단 한 번도 없었으며, 언제나 만면에 웃음이 사라진 때는 없었다.

진짜로 외로워서 그랬는지 아니면, 일상의 농이었는지 그 속내까지야 내가 알 수 없지 않은가? 
 

교과서 파동 당시 신형식 선생

 
일견 순탄한 것으로 보이는 그도 물론 내가 아는 아픔도 있어, 돈 문제로 심각한 지경에 내몰린 일도 있다고 알며, 그때문에 참말로 어려운 삶을 살기도 했다고 기억한다.

그 와중에 어느 해 겨울인가에는 사는 곳 근처에서 굴러 심각히 다쳐 고생한 일도 기억이 뚜렷하다. 

국정교과서 참여 선언은 물론 그의 정치지향 혹은 신념에서 비롯된 바가 가장 컸겠지만, 경제 문제도 컸다고 나는 생각한다. 이는 그만큼 그가 퇴직해서도 벌이가 있어야 했던 사정이 어느 정도 반영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한다. 

그의 자제분 중에서는 아드님을 내가 좀 안다. 그의 부고장에는 그 아드님 근무처가 모 방송사로 되어 있는데, 내 기억에 어느 일간 신문사로 기자 생활을 시작했다.

그 아드님이 기자가 되었다고 좋아하시면서 요새 신문기자가 별로인 거 같은데 어떻소 하고 여쭙기에 "정 신문이 마음에 안 든다면, 요새는 이직 기회가 얼마든 있으므로 혹 나중에 그런 기회가 오면 옮기면 되지 않겠습니까"라는 요지로 말씀을 드린 적 있다.

근자엔 뵐 일이 없어 저와 같은 일이 있기는 했지만 워낙 건강 관리를 잘 하는 분이고, 그렇게 보였기에 무탈하게 잘 지낼 줄 알았다가 부고가 날아드니 놀랍다. 근황을 아는 분께 들으니 요새 건강이 좀 안 좋았다는 말을 뒤늦게 듣기도 했다. 

그는 주된 전공이 신라사라 하겠지만, 그 시대 역사학도가 거개 그렇듯이 어느 한 곳에 매몰하지 않고 고대사는 두려 섭렵했으니 단행본 기준으로 1981년 일조각에서 선보인 '삼국사기연구'가 매우 의미가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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