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춘동 선문대 역사문화콘텐츠학과 교수
兪春東 鮮文大學 歷史文化Contents學科 敎授
20세기초 세책점의 모습, 위치, 영업 실태를 우리에게 알려준 대표적인 사람은 모리스쿠랑(Maurice Courant)과 최남선(崔南善)이다. 이들은 세책점을 이야기하면서, 1910년대 상황을 보아서는 조만간 한양에서 세책점이 모두 없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이들이 예언과는 다르게 1910년대 이후에도 서울에서는 세책점(貰冊店)과 세책이 존재했었고, 그 대본은(貸本)은 필사본(筆寫本)과 방각본(坊刻本)은 물론, 당시로서는 새 출판물이었던 구활자본(舊活字本) 고전소설까지도 빌려주며 영업했다.
문제는 이 시기에 우리 문학사에서 구태의연한 ‘고소설’을 탈피하고 새로운 형식과 내용의 소설을 선보이자는 취지에서 신소설(新小說)이 혜성과 같이 등장한 시기였다는 점이다.
이해조의 신소설 <월하가인>
고소설, 옛이야기를 취급하며 영업한 세책점은 이러한 시대의 파고를 어떻게 해결해 나갔을까? 이 문제는 사실 중요하지만 그동안 추정만 있었을 뿐 구체적인 사실을 알려줄 만한 자료가 없었다.
이 문제는 이 글에서 소개할 세책본 『월하가인(月下佳人)』을 통해서 그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 『월하가인』은 신소설 작가로 유명한 이해조(李海朝, 1869~1927)가 지은 작품이다. 『매일신보(每日新報)』에 1911년 1월 18일자로 첫 연재를 시작하여, 같은 해 4월 5일까지 게재가 마무리 되었다. 그리고 곧바로 단행본이 나왔다.
이 소설은 동학란(東學亂)을 계기로 충주에 거주하던 심학서와 부인 장씨가 서울로 상경하면서부터 겪은 파란만장한 삶을 다룬다. 심학서를 중심으로 줄거리를 정리해본다면, 동학도(東學徒)를 피해 고향이 충주를 떠나 경기도 양주로, 다시 서울로 피신한 심학서 일가가 어렵게 생계를 유지하다가, 우연히 심학서의 친구였던 정윤조를 만나 묵서가(墨西哥, 멕시코)로 돈을 벌기 위해 이민을 떠났지만, 그곳에서 돈을 벌기는커녕 모진 학대를 받다 천신만고 끝에 중국인 왕대춘의 도움으로 위기를 모면하며 미국으로 건너간다. 이후 미국에서 사환을 하며 어렵게 공부한 끝에 심학서는 공사관 서기가 되며, 이후 국내로 귀국하여 우여곡절 끝에 부인과 자식을 재회하게 된다.
세책본 월하가인의 본문
세책점은 이처럼 시대의 유행 소설이 등장하자 곧바로 세책점에서 대여해주었다. 이때 형태는 출간된 간행물이 아니라 전통적인 세책처럼 필사해서 대여해주었고, 이윤을 추구하기 위해서 내용을 적절히 첨가·변형하고, 전체 내용을 고려해서 분권(分卷)하여 대여해주었다.
세책본 『월하가인』은 사진처럼 조선후기 유행한 세책본의 전형적인 모습을 보여준다. 책은 많은 사람 손을 거치기 때문에 파손을 최소화하기 위해 책을 두껍게 장정(裝幀)했다. 그리고 대여 과정에서 본문 글자가 지워짐을 막고자 본문 마지막 행 한두 글자는 비워두었다. 아울러 책 상단에는 장수(張數)를 기재하여 해당 부분이 훼손되었을 때 경우 쉽게 보수토록 해 놓았다.
세책본 <월하가인>의 마지막
세책점은 현재 종로구 홍지동 부근에서 영업한 내동(內洞) 세책점이다. 사람들 왕래가 잦은 종로에 세책점이 있었고 여기에서 사람들에게 신소설도 자체적으로 제작하여 대여해 주었음을 볼 수 있다.
이 과정에서 내용을 적절히 첨가·변형하고, 전체 내용을 고려해서 분권(分卷)하여 대여해주었다. 이를 통해서 출판 환경의 변화, 신간(新刊)이 만들어 짐에 따라 그때그때 환경에 적응하여 발빠르게 대여 품목을 제작한 세책업자의 능력을 볼 수가 있다.
예나 지금이나 돈버는 자들의 뛰어난 능력은 따라갈 자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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