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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춘동의 도서문화와 세책

일제강점기 서울에 있던 ‘우유목장牛乳牧場’

유춘동 선문대 역사문화콘텐츠학과 교수 


우리나라 우유牛乳산업은 일본인 오부에 고노스케가 1890년 조선朝鮮 정부에 허가를 받아 영업한 일을 시초로 본다. 


조선이 일본 합병된 뒤로 우유는 일본의 대표적 유가공 업체였던 모리나가森永, 메이지明治 등이 국내 여러 곳에 농장을 세워 직영으로 운영하며 생산했다. 축산업 특성상 농장은 거대한 초원이 필요하다. 이로 인해 대부분 목장은 북한 지역이나 지방에 많았다.

그러나 일제강점기 경성京城에는 목장 세 곳이 존재했다. 바로 평산목장平山牧場, 동양목장東洋牧場, 경성목장京城牧場이다. 

평산목장 전경全景



평산목장은 현재 돈암동 성신여대 부근에 있었던 목장이었다. 규모가 컸으며 우유 생산량이 많았다.

동양목장 전경


동양목장은 현재 신설동과 청량리 일대에 있던 목장이었다. 이곳에서도 우유 생산량이 비교적 많았다.



그러나 두 곳의 목장은 현재 홍제동에 있었던 경성목장에 비하면 상대가 되지 않았다. 경성목장은 두 곳 목장보다 젖소도 많아 우유 생산량이 압도적 우위에 있었다. 이로 인해 우유의 대부분을 가정으로 공급하는 것이 아니라 군부대(軍部隊), 관공서(官公署), 병원(病院)과 같은 공공기관에만 제공했다. 

일제강점기 우유 광고


1910년대까지 조선인들에게 우유는 생소한 것이었다. 무엇보다 우유에 적응이 되지 않았기 때문에 우유를 마시면 사람들에게 배탈이 많아 기피 대상이 되었다. 그러나 우유의 수요는 1920년대 급격히 늘어났다. 그 이유는 생우유가 아닌 분유와 연유가 대 히트(HIT)를 치면서였다. 

  우유에 대한 인식은 이후 변하게 되어, 어린이의 성장 음식, 성인에게는 자양음식, 계절음식으로 삶의 ‘복음(福音)’을 주는 음식으로 여기게 되었다. 그래서 1930년대에 들어서는 우유 판매가 급격히 늘어나게 되어 품귀 현상도 벌어지게 되었다.

  그래서 본의 아니게 유통기한이 훨씬 지난 우유를 사람들에게 판매하게 되었고, 이것이 사회적으로 큰 문제가 되는 일도 생겼다.



지금으로부터 100년 전, 서울 우유를 생산하는 목장들이 있었다는 것이 믿겨지지 않는 일이다. 아울러 우유가 당시 사람들에게 ‘복음’을 주는 특별한 음식이라고 믿었다는 사실 또한 현재의 생각으로는 납득이 가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