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1. 21.]
평상시 눈여겨 보지 않았는데,
오늘 용인 심곡서원 교육관에 걸린 역대 원장 사진을 쭉 보다가~
조소앙 선생님이 계신 걸 알게 됐다.
이전에 기록으로 보았을 때는 주로 해외에 계셨던 걸로 알고 있어서 동명이인이 아닌가 했는데,
사진을 보니 같은 분😳
어떻게 1942~1945년 사이에 심곡서원 원장이신 거지....!?
당시 이 포스팅을 보고 안중근의사기념관 이주화 선생님께서 이런 의견을 주셨었다.
“조소앙 선생 관련 기록은 크게 세 가지인데요.
<소앙집>(소앙문집이라고도 함)과 <유방집>은 중국에서 33년에 간행하였고요, <조소앙일기>는 37~40년 사이의 기록이예요.
심곡서원 연혁에는 43년에 원장을 맡은 것으로 되어 있는데 그 시기에는 조소앙이 남긴 기록이 없습니다.
그래서 당시 임시정부 임시의정원 회의록과 임시정부 자료집에서 43년도 기사를 모두 찾아보았지만 관련 사실은 찾을 수 없었고요.
국내 신문 자료는 조선, 동아가 40년에 폐간되는 탓에 남아있지 않습니다. 유일하게 중경에서 독립신문이 발행되었지만 역시 관계 기사는 없었습니다.
조소앙 선생 본명이 "조용은"이어서 별도 검색을 하여도 결과는 마찬가지였습니다.
(조소앙 선생이 심곡서원장을 맡았다는 전제 하에) 이제 남은 가설은 이렇습니다.
42년 10월 조소앙은 중경 임정 외무부장(장관급)을 역임하면서 "한중문화협회"를 창립하고 부이사장을 맡습니다.
이에 국내에 있던 유림들 가운데 심곡서원 관계자들이 중경에 서한을 보내 원장 위촉을 부탁하고 본인이 수락했다면 가능은 한 이야기입니다.
한중문화협회가 주로 유학자나 지식인들과 관련한 활동을 천명하였거든요. 조소앙 본인도 성균관 출신이고 한학에 조예가 깊었는데다가 조선시대 유학사상사에 관심이 많았습니다.
문제는 그 직접 증거가 없다는 것입니다. 제가 공부가 짧아 아직 찾지 못했을 수는 있지만 적어도 조소앙 선생 관련 자료에서는 발견할 수 없었습니다.
(중략)
아시다시피 조소앙은 3.1운동 이후에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이념과 노선을 결정한 사람입니다.
교과서에도 나오는 이른바 "삼균주의"인데요. 정치, 경제, 교육의 균등을 얘기하고 있어요.
지금의 북유럽과 같은 일종의 사회민주주의적 사상인데 재밌는건 당시 이승만의 적극 지지를 받았다는 거예요.
암튼 그런 사상을 가진 분이 서원 원장직을 수락했다면 국내 교육기관에 관심을 가졌다는 증거가 되니까 매우 흥미로운 사건입니다.
다른 서원도 아닌 심곡서원은 정암의 개혁론을 상징하는 곳이니까 조소앙이 관심을 가지는게 어느 정도 개연성도 있고요.
조소앙은 경기도 사람이라서 지역 파벌도 없었고 영남 남인이나 충청도 노론으로부터도 자유로운 입장이니 붕당이 나눠지기 이전 사람인 정암한테 끌렸을 수도 있겠습니다.
(가설이 사실로 확인된다면) 임정 사람들이 가진 이념의 연원을 정암에서부터 두고 있었다 정도의 의의가 있겠네요.
나아가 21세기 우리가 지향해야할 개혁의 연원이 정암으로 소급되는 것이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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