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시, 계절의 노래(176)
아미산 달 타령(峨眉山月歌)
당 이백 / 김영문 選譯評
아미산에 반달 뜬
이 가을날에
달그림자 평강강에
비쳐 흐르네
밤중에 청계 떠나
삼협 향하며
그리운 임 못 만나고
투주로 가네
峨眉山月半輪秋, 影入平羌江水流. 夜發淸溪向三峽, 思君不見下渝州.
너무 식상한 평어(評語)이지만 또 다시 천의무봉이란 말을 쓸 수밖에 없다. 칠언절구는 4구 28자로 구성되는 지극히 정련된 시 형식이다. 이처럼 짧은 시에 지명이 다섯 개나 등장한다. 아미산(峨眉山), 평강강(平羌江), 청계(淸溪), 삼협(三峽), 투주(渝州)가 그것이다. 총 28자 중 12자가 지명이다. 동서고금의 어떤 시인이 시 한 수를 지으면서 거의 절반에 가까운 시어를 지명으로 채울까? 그런데도 전혀 어색하지 않고 자연스럽다. 오히려 지명의 의미가 시에 완전히 녹아들어 시의 이미지를 강화한다. 아미(峨眉)는 아미(蛾眉)와 발음이 같아 뾰죽한 산봉우리와 눈썹달을 연상하게 한다. 그 발치를 흐르는 평강강(平羌江)은 넓은 평지를 도도하게 흘러가는 강물이다. 아미산에 뜬 아미월(눈썹달)이 강물 속으로 비쳐들어 강과 산이 한 몸이 된다. 절묘하다. 청계(淸溪)는 맑은 물이므로, 산자수명(山紫水明)한 사천(四川)의 풍경을 상징한다. 그 깨끗한 고을을 출발하여 험준한 삼협으로 향하는 마음엔 기대와 불안이 뒤섞인다. 고향을 처음 떠나 객지로 나갈 때 우리도 이와 같지 않았던가? 하지만 내가 사랑하는 사람에겐 인사도 하지 못했다. 그리고 지나는 곳이 어디인가? 투주(渝州)다. 투(渝)는 마음이 변한다는 뜻이다. 땅이 바뀌고 세월이 흐르면 애틋했던 마음도 담담해지기 마련이다. 대개 새로운 사람을 만나 새로운 사랑을 시작한다. 하지만 저 아미산에 뜬 달이 내가 탄 배 위로 끝없이 따라 오듯 나의 마음도 달님을 매개로 그리운 사람을 잊지 못한다. 여러분이 그리워하는 사람은 평안하신가? 한가위가 다가오는 저녁, 저 하늘 위에 뜬 아미월을 한 번 올려다보시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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