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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SAYS & MISCELLANIES

애매曖昧를 위한 변명, 하안何晏의 경복전부景福殿賦를 중심으로

by taeshik.kim 2018. 2.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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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진남북조시대 지식인 사회 사상계를 풍미한 이른바 현학玄學 열풍을 논할 적에 왕필王弼과 더불어 늘 그 쌍괴雙魁로 거론되는 이가 하안何晏이니,

그가 남긴 장대한 서사 문학의 금자탑으로 경복전부景福殿賦라 제題하는 것이 있어, 이는 제목 그대로 경복전景福殿이라는 궁궐 완성을 기념해 그 건물의 장대함과 당시 황제의 위대함을 칭송한 산문과 운문의 중간적 존재라. 

그 첫 대목을 볼짝시면,  

大哉惟魏, 世有哲聖. 武創元基, 文集大命. 皆體天作制, 順時立政. 至於帝皇, 遂重熙而累盛.  

이라 했으니 이를 굳이 옮긴다면,  

위대하구나 魏나라여, 세상에 현철한 성인이 계셨으니, 무제武帝께서는 큰 터를 세우시고, 문제文帝께서는 하늘의 명을 모으셨으니, 모두가 하늘을 본받아 제도를 정하시고, 때에 맞춰 다스림을 세우시니라. 지금의 황제에 이르러 마침내 그 밝음을 거듭하시고 성대함을 거듭 쌓으셨도다. 

이 경복전부는 당연히 현재의 황제를 칭송하는 데 초점이 가 있으니, 이후에는 볼짝없이 현재의 황제를 칭송하는 구절로 이어질 것이어니와,

그가 이룩한 업적 중 하나로 당연히 이 賦의 소재이자 주제인 景福殿으로 마침내 넘어간다.
 

전통시대 이런 궁궐이 사치의 대명사였다.

 
경복전이란 낙양을 위시하여 당시 위국魏國의 오도五都, 즉, 5개 수도 중 하나로 일컬어지는 허창許昌이라는 곳에 세운 궁궐 건축물을 일컬음이니, 바로 이에서 조선왕조의 法宮인 경복궁의 이름이 유래한다.

그럼에도 조선왕조실록에 저록著錄된 정도전의 말만 믿어 경복궁이라는 이름 자체가 무슨 조선왕조, 혹은 정도전 자체의 창안 혹은 발상으로 여기곤 하지만, 이는 얼토당토 않은 소리다.  

하안은 지금 황제의 업적을 칭송하다가 그 구체적인 실례로써 경복전 건립을 들거니와, 이 대목을 볼짝시면,

且許昌者, 乃大運之攸戾, 圖讖之所旌. 苟德義其如斯, 夫何宮室之勿營? 帝曰:“俞哉!”  

라 하니, 이는 대략 다음과 같이 옮겨 이해할 수 있으리라.  

(신하들이 아뢰기를) 나아가 허창許昌이란 곳은 곧 대운大運이 이르는 곳이니 도참圖讖에서 지칭한 곳이옵니다. 진실로 德과 義가 이와 같다면 어찌 궁실宮室을 세우지 않으시겠습니까?“라고 하니, 황제께서 이르시기를 “그렇도다!”고 하셨다.  

이렇게 경복전은 황제의 윤허 아래 有司(담당관서)에서 건축에 들어가니, 하안의 증언을 그대로 빌리자면 “일력日力을 심량審量하고 비무費務를 상도詳度”하여 “경시지려민經始之黎民을 구鳩하고 농공지가예農功之暇豫를 집輯하는 한편, 동사지헌첩東師之獻捷으로 인因하고 해얼지유뢰海孽之賄賂를 취就하여서” 마침내 “경복지비전景福之秘殿을 립立”하게 된다. 

들어갈 노동력을 계산하고, 그 비용을 상세히 계산해서 백성을 동원하되, 농한기를 이용했으며, 나아가 동쪽으로의 군사 정벌, 즉, 오나라와 전쟁을 해서 이겨 얻은 전리품으로 경복전이라는 새로운 궁전을 세웠다는 말이다.

땡전 한푼 안 들이고 만들었다는 뜻이다.

이런 순서를 밟아 가면 우리가 賦라는 문학 형식이 매우 생소하다 해도 그 다음에 무슨 내용이 따를지는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으니,

이렇게 세운 경복전이 얼마나 장대하고 훌륭한 궁전 건축인지가 따를 것임은 불문不問해도 가지可知하다. 
 

넝쿨이 우거지면 해를 가리는 법이다. 그것이 애매다.

 
실제 景福殿賦는 이렇게 흘러가니, 먼저 景福殿 건물 양태가 외관에서 장대함을 기술하고, 이어 그에 견주어 그 내부는 신비한 공간임을 강조하게 된다. 이 대목이 경복전부에서는 다음과 같이 묘사됐으니, 

故其華表則鎬鎬鑠鑠, 赫奕章灼, 若日月之麗天也. 其奧秘則蘙蔽曖昧, 髣彿退概, 若幽星之纚連也. 

라 하거니와, 이 대목은 이해에 적지 않은 애로가 있어 무엇보다 하안이 구사하는 어휘가 난수표를 방불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대략의 의미는 파악 가능하니, 이에서 지시 대명사 ‘其’는 말할 것도 없이 景福殿이라는 궁궐을 말함이니, 전반부는 그것(경복전)의 화표華表, 즉, 화려한 표상(겉모습)을 기술하고, 후반부는 그것의 ‘오비奧秘 ’ , 즉, 신비로움을 풍기는 내부를 기술하는 것이다.

한데 그 겉모습을 수식한 형용사가 당장 화華이니, 하안이 이를 통해 외부 경관을 어떻게 기술할 지는 삼척동자도 알지니, 화려 장대함에 초점을 맞출 것이다. 그에 대비해 ‘오奧’, 즉, 내부는 ‘비秘’라고 했다. 

실제 그 화려한 겉모습을 하안은 “鎬鎬鑠鑠, 赫奕章灼, 若日月之麗天也”라고 했다. “鎬鎬鑠鑠, 赫奕章灼”이라는 말이 정확히 어떤 의미인지 적어도 이 자리에서는 알 필요가 없다.

이들 단어에 화려함, 햇빛과 동의어들인 金과 火와 같은 부수자를 사용하고 赫, 章처럼 불과 관련된 단어를 총동원했으므로, 그 모습이 “눈이 부시다”는 뜻이 됨은 이제는 알 터이다.

실제로 그 모습을 개괄한다면, 하안은 이런 겉모습이 “若日月之麗天”, 즉, 해와 달이 맑은 하늘에 빛나는 것 같다고 했다. 

하지만 이런 겉모습과는 대비되어 내부는 음침하며 을씨년스럽기만 하다. 그 모습을 하안은 “蘙蔽하고 曖昧하여 退概를 彷佛하니” 그것은 마치 “幽星의 纚連과 같다”고 했다. 

그렇다면 “예폐蘙蔽”란 무엇인가? 엄밀한 학문적 자세가 아니라면 이것을 굳이 자전까지 찾을 필요는 없으니, 두 단어 모두 풀草을 의미하는 ‘艸’가 글자 꼭대기에 있으니, 이런 풀이 머리에 우거진 모습이 어떻겠는가?

햇빛이 들어오지 않은 모습을 형용한 말이다.

그렇다면 이와 병렬적으로 경복전 내부를 묘사하는 데 사용한 “애매曖昧”라는 말도 그 의미가 자명해졌다.

一言以蔽之건대 “예폐蘙蔽”의 다른 표현일 뿐이다. 즉, 曖昧 또한 햇빛이 들지 않아 어둑어둑하여 무엇이 무엇인지를 구분하지 못한다는 말이다. 이것이 바로 曖昧의 근본 의미다.

나아가 이런 曖昧가 바로 지금의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사용하는 그 뜻인 것이다.

함에도 어찌하여 적어도 그 역사가 2천년을 자랑하는 이런 曖昧라는 말이 일본말의 殘滓로 취급되어 퇴출되어야 하는 위기를 맞았던가? (2011.09.21 08:57:52)

 
***
 
한글운동, 또 그 일환으로서의 한자추방운동, 특히 일본식 한자어 추방운동이 쉬운 일상 언어생활을 만드는 데 적지 않은 기여를 했음은 사실이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얼토당토 아니한 피해자가 생겨났으니, 그 운동 초창기에 저 애매라는 말도 일본말 찌꺼기로 치부되어 일본식 한자 조어니 추방해야 하며, 그 대타로 고른 것이 모호[模糊 혹은 糢糊]였으니, 

훗날 애매가 일본식 한자조어라는 말은 없어지기는 한 것으로 알지만, 억단에 기초하는 추방은 또 다른 폭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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