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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문화 이모저모

[엉터리 고고학용어] 분구墳丘

by 세상의 모든 역사 2020. 10.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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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무덤에 분구墳丘를 조성하지는 않는다.

이것도 시대에 따른 유행이 민감하기 짝이 없다. 

분구란 무엇인가?
 
墳의 丘인가? 아니면 墳과 丘인가? 
 

태종무열왕릉. 저 우람한 흙더미 표식을 봉분封墳이라 한다. 


내가 아무리 봐도 한국고고학계에서 사용하는 뜻은 전자다.

이 경우 분구란 무덤의 언덕이라는 뜻이다. 
 
하지만 墳丘는 액면 그대로 보면 후자다.

왜냐하면 墳과 丘는 무덤, 특히 개중에서도 봉분封墳이라 일컫는 표식이 있는 같은 무덤을 지칭하는 말이기 때문이다.

무덤 중에서도 봉분이 없는 것을 저리 표현하지는 않는다.  

예서 각종 억설과 불일치가 발생한다.

墳丘란 무엇인가?

글자 그대로는 봉분封墳이다. 매장주체시설을 덮은 흙덩이, 곧 mound를 분구라 한다.

墳이건 丘건, 封이건 모조리 봉분을 말하기 때문이다.

함에도 한국고고학에서는 특정한 시대 특정한 무덤만을 지칭해 분구묘라고 한다.

이는 완전히 잘못된 造語다.
 
(2014. 10. 24) 

 
***
 

현재의 공주 송산리고분군. 지금은 봉분을 저리 높여놨지만, 조성 당시 이 시대 백제무덤은 봉분을 거의 알아보지 힘들 정도로 거의 만들지 않았거나 아주 낮게 쌓았다. 

 
이 분구묘라는 말은 말할 것도 없이 일본 고고학계에서 유래한 것으로, 아무런 비판의식도 없이 그대로 갖다 쓰는 바람에 촌극이 빚어졌다.

현행 한국고고학에서 통용하는 분구는 '墳의 丘'이건 '墳과 丘'이건 관계없이 특정한 시기에 등장하는 봉분 곧 mound를 갖춘 무덤을 말한다.

이 경우 그런 무덤을 분구묘로 지칭하는 것은 완전히 잘못됐다는 뜻이다. 
 
왜냐하면 분구라는 말 자체는 그 어디에서도 특정한 시기에 등장하는 봉분을 갖춘 무덤을 지칭할 수 없는 까닭이다.

글자 그대로, 액면 그대로는 현재 전통 매장방식에 의한 우리 사회 무덤은 모조리 분구묘인 까닭이며, 저에 따르면 신라 적석목곽분 역시 전형적인 분구묘인 까닭이다. 
 
분구묘墳丘墓라는 말 자체도 문제다.

분구 자체를 저리 쓴다면 그 자체가 무덤이라는 같은 용어를 병렬로 지칭한 것인데, 그에다가 어찌하여 또 그 근간 성격에서는 같은 墓라는 말을 또 붙인단 말인가?

墓는 엄밀히 구분할 적에는 풀 초[艹]가 부수자로 들어간 데서 엿보듯이 본래는 무덤 중에서도 봉분과 같은 표식이 없는 무덤을 말한다.

요컨대 편평하게 만들어 잡풀이 난 무덤을 墓라고 한다. 
 

부산 복천동고분군. 쌓은 주체가 신라인지 가야인지 논란이 있다. 저 시대 무덤에는 봉분이 거의 보이지 않는다. 이런 무덤을 墓라고 한다. 

 
따라서 봉분을 갖춘 무덤이라는 뜻에서 墓라는 말을 쓰는 자체가 형용모순이다. 
 
이는 현행 고고학계에서 통용하는 분구라는 말 자체가 말도 되지 않음을 지적한 것이고, 그렇다면 애초 '墳丘'라는 말은 없는가 하면 이에서 또 다른 심각한 문제가 발생한다.

분구라는 말이 있고, 그 쓰임이 아주 광범위한 까닭이다.

그에 대해서는 아래 기호철 선생 지적을 음미하기 바란다. 

 
*** 

 
분구는 '책무덤' 혹은 '고대전적'이라는 말인데 모르고 엉터리 말을 만든 것이다.

墳丘(분구)
(墳丘, 坟丘)

三墳、九丘的並稱。 亦泛指古代典籍。(분구라는 말은 삼분三墳, 혹은 구구九丘라고도 한다. 모두 고대 전적을 의미한다) 

漢 應瑒 《文質論》: “覽墳丘於皇代, 建不刊之洪制。”
晉 潘尼 《贈陸機出為吳王郎中令》詩之一: “振鱗南海, 濯翼清流。 婆娑翰林, 容與墳丘。”

三墳(삼분)
傳說中我國最古的書籍。《左傳·昭公十二年》:“是能讀三墳、五典、八索、九丘。”杜預注:“皆古書名。”“三墳”,三皇之書,也有認爲系指天、地、人三禮,或天、地、人三氣的,均見孔穎達疏引。近人章炳麟《檢論·尙書故言》則謂:“墳、丘十二,宜即夷吾所記泰山刻石十有二家也。”今存《三墳書》,分山墳、氣墳、形墳,以《連山》爲伏羲作,《歸藏》爲神農作,《乾坤》爲黃帝作,各衍爲六十四卦,系之以傳,且雜以《河圖》,實系宋人偽造。
 

봉분이 거의 없는 대신 땅속으로 한정없이 기어들어간 복천동고분



九丘(구구) 
1.傳說中我國最古的書名。《左傳·昭公十二年》:“楚左史倚相趨過,王曰:‘是良史也,子善視之,是能讀《三墳》、《五典》、《八索》、《九丘》。’”杜預注:“皆古書名。”《<書>序》:“九州之志,謂之《九丘》,丘,聚也。言九州所有,土地所生,風氣所宜,皆聚此書也。”唐楊炯《從弟去溢墓志銘》:“若夫羽陵遺策,汲塚殘書,倚相之《八索》《九丘》,張華之千門萬戶,莫不山藏海納,學無所遺。”
2.指九州。宋黃庭堅《常父惠示丁卯雪十四韻謹同韻賦之》:“下令走百神,大雲庇九丘。”明陳文燭《<少室山房筆叢>序》:“索諸九丘之遠,論於六合之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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