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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문화 이모저모

역사학도로서의 박창화

by 한량 taeshik.kim 2020. 10. 19.

남당 박창화....나는 그를 20세기 역사학자로 자리매김해야 한다고 목청껏 외쳤다. 그는 화랑세기 필사자이기 이전에 역사학도다.

하지만 화랑세기에 매몰되는 바람에 화랑세기 신빙론자들은 그를 역사학의 문외한으로 만들었고(왜냐하면 그래야 화랑세기처럼 위대한 역사서를 조작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 반대편 위서론자들은 그를 천재역인 역사학자로 만들었다.(왜냐하면 그래야 화랑세기처럼 참으로 '교묘한' 역사서를 만들어내기 때문이다)

 

남당 박창화와 그의 논문 구성변九城辨



나는 졸저 《화랑세기 또 하나의 신라》, 그리고 2003년 《역사비평》 투고 논문을 통해, 이 양쪽을 싸잡아 비난했다. 덕분에 그 전부터 웬수였던 위서론자들과는 여전히 웬수였지만, 그 전부터 우호적이었던 신빙론자들과도 갈라섰다.

내가 양쪽을 모두 비난한 이유는 간단했다. 화랑세기를 어떻게 보건, 그 화랑세기를 통해 그네들의 그때까지 연구를 검증받고자 한다는 점에서는 하등 다를 바가 없었기 때문이다.

신빙론에서는 봐라, 내가 한 말이 맞는 내용이 화랑세기에 있지 않냐면서 화랑세기를 인용 혹은 옹호했고, 그 반대편에서는 우리가, 그리고 내가 연구한 것과는 너무나 다르지 않냐, 그래서 가짜다 라고 주장했던 것이다.

 

《중앙사단中央史壇》에 실린 박창화 朴昌和 논문 <신라사에 대하여(2)>



그런 점에서 언뜻 상반하는 두 가지 논점은 근간에서는 같다고 나는 비판했다.

그러면서 나는 당시 내가 박창화 역사학 관련 논문 두 편을 《중앙사단》이라는 잡지에서 발굴해 박환무와 더불어 《역사비평》에 소개하면서, 박창화는 뛰어난 역사천재가 아닌, 20세기 역사학도이며, 그 또한 시대의 한계를 받을 수밖에 없다면서, 그를 신채호나 박은식 시대의 또 다른 역사학도로 보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후 박창화의 손자 박인규가 할아버지 미간 원고들 중 고대 강역과 관련되는 몇 가지 글들을 추가로 공간했다.
이를 통해 박창화가 역사학도임이 명백해졌으며, 내 주장 역시 입증을 보게 되었다.

박창화의 논문 <강역고疆域考> 



이런 그를 역사학도로 조명하고자 하는 학술대회가 고려대 무슨 연구소 주최로 개최되는 모양이다.

그 발표진, 그리고 제목 면면을 보니, 들어가지 말았어야 하는 사람도 들어간 듯해서, 아쉽기는 하나, 그래도 그를 역사학도로 자리매김하고자 한 시도 자체는 높이 평가하고 싶다.

박창화는 역사학자다.

(2017. 10.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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