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질문에 시달린 분 꽤 있다. 위만조선 중심지가 이른바 정통 학계에서는 지금의 평양 일대라고 의심치 않는다.
하지만 위만조선시대를 증언하는 유적은 단언하거니와 단 한 기도 없다. 이 시대에 해당하는 유적이 서너곳 알려져 있을 뿐이다.
반면 그 땅에 설치되었다는 이른바 낙랑시대 유적은 쏟아졌다.
혹자는 위만조선 역사가 100년밖에 되지 않는 점을 거론한다. 또 혹자는 고고학 발굴성과의 미비를 거론하기도 한다. 그 어느 것도 타당하지 않다.
발굴성과가 미미 미비해서 소위 낙랑시대 유적 유물은 쏟아졌다는 말인가?
위만조선 역사 100년을 거론하지만 이는 동시대 위만조선과 똑같은 길을 걸은 남월왕국과 대비할 때 얼토당토 않은 주장이다.
위만조선은 대략 기원전 200-190년대 무렵에 중국에서 도망한 위만이라는 자가 건국했다. 3대를 지나 우거왕 때인 기원전 108년 무렵에 망했다. 그 땅에 4군이 설치됐다. 딱 100년이다.
남월국 역시 기원전 200년 무렵에 역시 산동성 떨거지인 조타라는 사람이 세운 왕조로 그 멸망 시점은 위만조선이 멸망하기 몇년 전인 기원전 111년(?)이다.
이 역시 딱 100년 왕조다. 그 땅에 7군이 설치됐다. 한데 남월국 역사는 어떠한가? 광동성 광주 일대를 중심으로 쏟아져 나왔다.
궁성이 나오고, 수갑이 나오고 왕릉이 나오고 기타 우수마발 그 시대 집권지배층 무덤도 적지 않게 확인됐다.
묻는다.
평양 일대 혹은 그 주변에서 위만조선 왕성 자리 나왔는가?
위만조선시대 지배층 공동묘지 나왔는가?
왕릉 나왔는가?
이걸 대답하지 않고는 위만조선 왕검성=평양설은 개소리에 지나지 않는다.
(2015. 10.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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