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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진족이 통일되어 주변에 대한 정복전을 시작할 때까지
이들은 집단안 싸움으로 날을 샜다.
농업사회 주변부에 형성된 수렵사회에서 (물론 여진 만주족은 완전한 수렵사회는 아니며 반농반수렵사회라 하지만)
내부에서 서로 치고 받는것은 하나도 이상한 일이 아니다.
외치의 죽음과 그 죽음 직전의 싸움을 범죄자에 대한 추격 내지는 반대로 악당의 습격을 받아 죽은 것으로 해석하는 것이
유럽 사회에서는 일반적인데
사실 이건 요즘 유럽 사회처럼 안정된 사회에서 살인사건이 발생했을 때 바라보는 해법이며
실제로 벌어졌던 사건의 정황은 이와는 다른 것이었을 가능성이 많다고 필자는 생각한다.
마치 여진족 내부에서 벌어진 집단 내부에 만성화한 싸움처럼
이들도 항용 서로간에 활을 당기고 칼질을 했을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는 말이다.
누구나 자신의 입장에서 다른 사건을 바라보며 재단하기 마련인데,
농업사회 주변부 수렵인들을 역사적으로 많이 접해보지 못한 유럽인들 입장에서 바라보는 것보다
이와 유사한 정황을 조선전-중기까지도 경험한 한국인의 시각이 더 정확할 수도 있는 것 아닐까.
필자는 외치가 주변 수렵인의 공격에 만성적으로 노출된 상태였으며
때로는 농경민으로부터도 위협을 받는 상황이었다고 본다.
조선시대 여진족이 그랬던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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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치이야기-45] 경계인은 농경사회의 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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