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미라 이야기: 신동훈 & 김태식/1-외치 이야기

[외치이야기-47] 외치와 마왕퇴

by 초야잠필 2025. 2. 3.
반응형

필자가 보기에 미라 연구에서 두 번의 중요한 사건을 들자면, 

하나는 외치이며 다른 하나는 마왕퇴다. 

마왕퇴는 중국에서 발견되고 순수히 중국 연구자들에 의해 연구된 때문에 상대적으로 잘 안 알려지고 저평가되는 감이 있는데

필자가 동아시아의 학자로서 보다 많은 이런 정보를 종합하고 이해하여 결론 내려 본다면

외치와 마왕퇴, 이 두 연구는 미라 연구사에서 막상막하의 업적을 남겼다. 


마왕퇴. 외치와 함께 미라 연구의 양대산맥이라 할 수 있다


이 두 사례 모두 연대가 오래된 것으로 역사학적 연구로만으로 공백이 되기 쉬운 많은 실증자료를 안겼고 

특히 그 당시를 살아가는 사람에 대한 의학적 정보를 제공한 측면, 

그리고 당시 사회에 대한 역사학적 이해를 풍부하게 했다는 점에서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다만 외치의 경우 마왕퇴보다 한걸음 더 나간 것이 있다면

당시 떠오르기 시작한 고대 DNA연구 기법을 그 시대 최고 수준의 연구실들이 참여해서 작업했다는 것으로 

이것이 외치가 마왕퇴를 아슬아슬 한 정도로 누르고 최고의 왕좌를 차지할 만한 기폭제가 되었다고 하겠다. 

외치 연구는 아직 끝나지가 않았다.

잊어버릴 만하면 뭔가 새로운 정보가 지금도 나오고 있다. 

이 연구는 향후 백 년은 더 갈 것이라  필자는 생각한다. 

 

[Editor's Note]

또 하나 생각해야 할 지점은 영향 관계다.

마왕퇴 한묘漢墓는 무령왕릉이 발굴된 그해 1971년 연말에 발견 발굴되기 시작해 1974년까지 종족 공동묘지 세 기가 조사를 완료했다.

그 공식 보고서는 80년대에 집대성되어 나오기 시작했으니 미라 조사 보고도 그에 당연히 포함된다.

외치 미라가 지금도 툭하면 새로운 조사성과라 해서 내는 것과 달리 마왕퇴 미라는 대규모 연구인력이 달라 붙어 한꺼번에 성과를 쏟아내고선 그 시신은 호남성박물원에 안치됐다.

시신은 완전히 해부하고 장기는 하나하나 발라내서 당시 할 수 있는 의학조사는 다했다.

지금 다시 시작한다면 DNA 조사가 있겠지만 당시로서는 그야말로 혁혁한 성과를 냈다.

참외씨를 장에서 찾아내고선 이 귀부인 사망 시점을 참외가 익는 계절로 확정했고 관절염을 앓았다는 사실도 밝혀냈다.

물론 그런 성과 중 상당 부문이 이 분야에서 연구를 선도한 구미쪽 경향을 흡수했겠지만

마왕퇴는 그런 것들을 집대성하고 또 새로운 돌파구를 열었다.

이 마왕퇴 의학연구가 저 외치 연구에도 틀림없이 심대한 영향을 미쳤을 텐데 그에 대한 언급들이 없다.

마왕퇴 미라는 장을 바꾸어 그 세계를 탐구하고자 한다.

 

*** previous article *** 

 

[외치이야기-46] (한국인의 입장에서) 전혀 이상하지 않은 외치의 싸움

 

 

[외치이야기-46] (한국인의 입장에서) 전혀 이상하지 않은 외치의 싸움

여진족이 통일되어 주변에 대한 정복전을 시작할 때까지 이들은 집단안 싸움으로 날을 샜다. 농업사회 주변부에 형성된 수렵사회에서 (물론 여진 만주족은 완전한 수렵사회는 아니며 반농반수

historylibrary.net

반응형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