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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o'sWho in Ancient Korea

요극일(姚克一)

by 세상의 모든 역사 2018. 3.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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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말을 대표하는 서예가. 생몰년은 알 수가 없다. 대안사 적인선사 탑비문(大安寺寂忍禪師塔碑文)과 황룡사 구층목탑 찰주본기(皇龍寺九層木塔刹柱本記), 삼랑사비문(三郎寺碑文)이 현재까지 확인되는 그의 글씨다. 신라 경문왕 12년(872) 8월 14일에 세운 곡성 적인선사 탑비문을 보면 관직이 중사인(中舍人)이고, 그해 11월 25일에 쓴 황룡사 목탑 찰주본기에는 관직이 숭문대랑 겸 춘궁 중사성신(崇文臺郎兼春宮中事省臣)이다. 삼랑사비문은 박거물(朴居勿)이 글을 썼다. 

삼국사기 권 제48(열전 제8) : 요극일(姚克一)이란 사람이 있었는데 벼슬이 시중겸 시서학사(侍書學士)에 이르렀는데 글씨에 힘[筆力]이 있었고 구양(歐陽)의 솔경법(率更法)을 터득했다. 비록 글씨는 김생에 미치지 못했지만 또한 뛰어난 솜씨였다.

삼국사기 권 제28(백제본기 제6) 백제부흥운동 : 또 들으니 “신라인은 스스로 소호금천씨(小昊金天氏) 후예이므로 성을 김씨라 하고,<신라 국자박사(國子博士) 설인선(薛因宣)이 지은 김유신비(金庾信碑) 및 박거물(朴居勿)이 지었고 요극일(姚克一)이 쓴 삼랑사비문(三郞寺碑文)에 보인다.> 고구려 역시 고신씨(高辛氏) 후예이므로 성을 고씨(高氏)라 했다.”고 한다.<진서(晉書) 재기(載記)에 보인다.>

(추가 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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