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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EWS & THESIS

원효의 혼이 서린 경주 고선사, 그리고 새롭게 드러난 그 석탑의 수리 내력

by 세상의 모든 역사 2020. 1.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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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 고선사지에서 찾은 얇은 부식 함석판 정체는

송고시간 | 2020-01-05 06:20

임재완 경주박물관 연구사 분석 "1943년 중수 공사 기록"

"3층 몸돌 사리구멍서 발견됐을 가능성"




국립경주박물관 사무동 전면 마당에 선 통일신라시대 초기 석탑이다. 지금은 덕동댐 건설로 수몰된 고선사高仙寺라는 통일신라시대 옛 절터에 있던 것을 1975년 이곳으로 이전 복원했다. 


이 고선사라는 절은 한국사에서는 원효와 관련 깊은 절이라 해서 유명하다. 


저 사진 석탑 앞쪽을 보면 비석을 꽂아 세운 받침돌 거북이돌을 보는데, 저것이 바로 같은 고선사 터에 있던 것으로, 원효대사 손자 설중업이 할아버지 행적을 기려 새겨 세운 서당화상비誓幢和尙牌를 박은 설비다. 




요롷게 생겼다. 좀 더 자세히 보면 다음과 같다. 





보다시피 거북은 목이 달아나고, 그 등짝 가운데는 비석 몸통을 꽂은 홈이 그대로 남았다. 


이제 고선사에 대해 좀 더 자세히 알아보자. 경주박물관에 저 석탑 앞에 세운 안내판을 조금 손봤다. 


고선사高仙寺는 원래 알천 상류인 경주시 암곡동岩谷洞에 있던 절로, 현재 이곳은 덕동댐이 건설되면서 물에 잠겨버렸습니다. 『삼국유사三國遺事에 따르면 이 절은 신문왕神文王(재위 681 692) 때 원효대사元曉大師(617~686)가 머무르던 곳이라고 합니다. 1914년 5월 원효대사의 행적을 기록한 서당화상비誓幢和尙牌 조각이 발견되어 원효대사가 입적한 686년 이전에 사찰의 면모가 갖추어졌던 것으로 보입니다. 


고려사高麗史에 현종顯宗(재위 1010~1031) 12년(1021) 고선사의 금란가사金欄袈裟와 불정골佛頂骨 등을 내전에 두었다는 기록이 있어 이때까지는 절의 법등法燈이 이어졌을 것이나, 인제 폐허가 되었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 


1975년 이 절터를 발굴하면서 금당터金堂址, 강당터講堂址, 중문터中門址, 회랑터回廊址 등의 건물 자리와 금동불, 기와, 전돌 등의 많은 문화재가 확인되었습니다. 여기 있는 석탑과 금당터. 비각터碑閣址의 지대석地臺石과 비석 받침은 발굴조사 뒤에 옮겨온 것들입니다. 


Goseonsa Temple 

At Goseonsa Temple, there remained only a three-story stone stupa, the site of the main hall, and a turtle-shaped monument support without a head. In 1975, when Deokdong Dam was built, the Cultural Properties Preservation Bureau (now the Cultural Properties Administration) conducted the excavation and confirmed the existence of such sites as the main hall, auditorium, middle gate, and corridor. Many cultural properties were found including a gilt bronze Buddha, roof tiles, and bricks, The three-story stone stupa. the base stones from the main hall and memorial pavilion sites, and the turtle-shaped monument support were moved to Gyeongju National Museum in 1975 and are currently on display. 





그렇담 이 석탑은 어떤가? 


경주 고선사지 삼층석탑 慶州高仙寺址三層石塔


지정(등록)일 : 1962. 12. 20

소재지 : 경북 경주시 일정로 186, 국립경주박물관

시대 : 통일신라시대 초기

소유자(소유단체) : 국유 


Three-story stupa from the monastic site of Goseonsa


Designation: National Treasure No. 38

Period: Early Unified Silla Period

Location: 186, Iljeong-ro, Gyeongju, Gyeongsangbuk-do


In 1975, it was moved to the National Museum of Gyeongju, as the Goseonsa Temple site had to be flooded with water for the construction of the Gyeongju Deokdong Dam. Because a stele to honor Wonhyo, one of the greatest Buddhist monks, was discovered in 1914, this stupa is supposed to have existed before 686, when he died.


It is a large three-story stone stupa with a three-story body on the two-story base. The height of the tower is 10.2m. The base is made of several stones and carved with columns on each side. Except the three-story body, the pagoda body was also made by assembling several stones. The three-story body is made of one stone for the purpose of storing sarira. This typical style can be also seen in the East and West Three-story Stone Pagodas at Gameunsa Temple Site. Three-story stone pagoda reached its artistic peak with the Three-story Stone Pagoda of Bulguksa Temple.



한데 이 고선사지 삼층석탑을 식민지시대인 1943년 조선총독부에서 손을 댄 모양이라, 이번에 그 자료를 국립경주박물관에서 정리한 모양이다. 





국립경주박물관이 소장한 석탑 함석판인데, 이를 분석했다고 한다. 




부식이 심한 이 함석판은 현재 가로 21.2㎝, 세로 18㎝, 두께 0.5㎜ 크기로, 1977년 고선사지 출토품이 박물관으로 일제 이관될 적에 넘어왔다고 한다. 


일제강점기 유명한 고고학자이자 경성제국대학 교수였던 후지타 료사쿠藤田亮策를 필두로 1940년대 초반에 조선총독부박물관장을 지낸 아리미쓰 교이치有光敎一, 한국과 일본 건축사를 비교한 스기야마 노부조杉山信三임이 분명한 인명이 보인다. 





'영'(令) 아래에 사람 이름으로 추정되는 글씨 3∼4자가 보이는 데 여섯 번째 줄 '공사 수○자 대전우일(工事 受○者 大田友一)'은 경주 노서리에 거주한 일본인 오타 유이치다. 그는 기록에 의하면 1943년 3월 1일부터 30일까지 중수 공사를 맡았다는 사실이 확인된다. 


이 고선사지는 대부분 수몰상태지만 작년인가 재작년인가 극심한 가뭄에 덕동댐이 바닥 가까이 수위가 낮아졌을 때 보니 그 터가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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