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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문화 이모저모

유종원柳宗元이 증언하는 대묘大墓

by taeshik.kim 2020. 6.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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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령왕릉이 위치한 공주 송산리고분군. 당시 왕가 부여씨 일가 가족공동묘지거니와, 이런 종족공동묘지를 일러 대묘大墓라 한다. 특정한 무덤을 지칭해 대묘라 한 것은 결코 아니다. 

 

 

《유종원집柳宗元集》에서 찾은 '大墓대묘'의 일례
- 무령왕릉武寧王陵 등관대묘登冠大墓와 관련하여 -

《柳宗元集》 卷10이 집적集積한 지誌 중 하나인 ‘여 시어 공 묘지 呂侍御恭墓誌’는 시어사侍御史를 역임한 여공呂恭이라는 사람의 묘지명墓誌銘이다. 

 

유종원이 이 묘지명을 쓰게 된 것은 여공이 친구의 동생이기 때문이다. 즉, 여공의 형이 형주자사를 역임한 여온呂溫이었던 것이다. 이에서 유종원은 여씨呂氏 일족이 하동河東에서 세거世居하다가 어사대부御史大夫로서 절동도절도대사浙東道節度大使가 된 여연지呂延之에 이르러 비로소 커졌다고 하면서, 원화元和 8年(813) 6月 28日에 卒한 그의 손자 여공呂恭의 생전 행적을 기술하고는 다음과 같은 그의 유족 이야기를 전한다.

처妻 배씨裴氏는 호부상서戶部尙書 연령延齡의 딸이다. 장부자丈夫子(아들)는 3명이 있으니 상爽ㆍ괴瑰ㆍ특特이 그들이이다. 딸은 셋이 있으니 환環ㆍ란鸞ㆍ천倩이 그들로 모두 어리다. 도중에 천倩 또한 죽어 결국 운구로 낙양洛陽까지 가서 대묘大墓에다가 함께 부장했다.

妻裴氏, 戶部尙書延齡女. 有丈夫子三人, 曰爽, 曰瑰, 曰特;女子三人:曰環, 曰鸞, 曰倩, 皆幼. 行於道而倩又死, 遂以柩如洛陽, 祔葬於大墓.


이 경우 '大墓' 역시 특정한 ‘큰 무덤’이 아니라, 여씨의 종족공동묘지 구역 전체를 말한다.

 

시흥 관곡지 주변 강희맹과 그의 종족 공동묘지. 이런 종족공동묘지를 대묘大墓라 한다. 



참고로 지금 우리가 이야기하는 ‘종족宗族’에 해당하는 표현이 유종원柳宗元 시대에는 무엇이었나를 같은 《柳宗元集》에서 조사해 보니, ‘종문宗門’이라고 하거나, ‘종宗’으로 표현되는 사례를 찾을 수 있었다. 

 

예컨대 ‘고 숙부 전중시어사 부군 묘판문 故叔父殿中侍御史府君墓版文’에서는 유종원이 숙부를 지칭해 “종문宗門의 의표儀表가 되었다”(表儀宗門)고 하는가 하면, ‘여 시어 공 묘지 呂侍御恭墓志’에서는 묘지墓誌 주인공인 여공呂恭을 일컬어 “실제로는 여씨呂氏의 종자宗子”(實惟呂氏宗子)라고 칭송한 대목이 그것이다. 

 

이 중 종문宗門은 말할 것도 없이 종족宗族에 해당하며, ‘종자宗子’는 이런 ‘宗門의 아들’이란 뜻이니, 이 경우 ‘宗’이라는 글자만으로도 宗門(宗族)을 표시한 셈이다.

 

(June 6, 2017 at 11:00 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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