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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문화 이모저모

사마왕의 동기동창 도홍경이 증언하는 대묘大墓

by 세상의 모든 역사 2020. 6.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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眞誥진고...참된 가르침 혹은 진인의 가르침 정도를 의미한다. 

 

 

남조시대 양梁나라 도사 도경홍陶弘景(456~536)이 찬撰한 《진고眞誥》 권20 ‘진주세보眞冑世譜’는 허장사許長史, 곧 허밀許謐 가문 6世 족보族譜다. 이에는 이런 말이 보인다.

“(허밀의) 처妻 대씨戴氏는 지금의 구용현句容縣 안성리묘安成里墓에 (남편과) 함께 장사지냈다. 창조지시刱造之始가 되니, 현縣 사람들이 전하여 일컫기를 ‘허광록묘許光祿墓’라고 한다. 지금 분비墳碑(묘비)가 현연顯然하니, 모두 갑향甲向이다” (妻戴氏, 同葬今句容縣安成里墓. 爲刱造之始, 縣人傳呼許光祿墓. 今墳碑顯然, 幷甲向)

이어 이런 말이 따른다.

“구용현 句容縣 북쪽 대묘大墓에다가 (남편과) 함께 장사지냈다” (同葬縣北大墓也)

이로써 대묘大墓가 가족공동묘지임이 명백하다.

같은 도홍경陶弘景 문집인 《도은거집陶隱居集》에는 ‘허장사구관단비許長史舊館壇碑’가 수록됐으니 그에 이르기를,

“眞人姓許, 諱穆, 世名謐, 字思玄. …太元元年, 解駕違世. 春秋七十有二. 子姪禮窆虛柩縣西大墓. 京陵之蹤未遠, 飛劍之槨在焉” (진인은 성이 허씨요, 생전 이름은 목이나 세상에는 밀이라는 이름으로 알려졌다. 자는 사현이다. 태원 원년에 세상을 등졌으니, 춘추 70하고도 두 살이었다. 그의 아들과 조카들이 구용현句容縣 서쪽 대묘大墓에다가 실제는 빈 관을 예로써 안치했다)

이 역시 허씨 가문공동묘지에다가 안치했다는 뜻이거니와, 이에서 大墓가 가족공동묘지임이 명백하다.

 

강소성 의흥宜興 소재 서진시대 주씨周氏 가족공동묘지

 

그렇다면 그 이전 혹은 이후 다른 데는 사정이 어떠한가?

 

먼저 무령왕릉보다 이전에 등장한 두 사례다. 

 

 

북위北魏 ‘유영 2주 구 사군 묘지 幽郢二州寇使君墓誌’

(유주幽州와 영주郢州, 두 주의 사군使君을 지낸 구씨寇氏 묘지명이라는 뜻이다.)  

“以正始三年三月○六日合厝于洛城西十五里大墓所.”

정시正始 3년(506) 3월 ○6일에 낙양성 서쪽 15리 대묘大墓가 있는 곳에다가 합장[合厝]한다. 



‘위 고 본군 공조행 고양현성 겸 군승 구군 묘지 魏故本郡功曹行高陽縣省兼郡丞寇君墓誌’

위魏나라에서 본군本郡 공조功曹 행 고양현성行高陽縣省으로서 해당 군郡의 승丞을 겸직한 구씨寇氏 묘지명이라는 뜻이다. 
“神龜二年歲在己亥二月辛亥朔○三日癸酉窆于大墓.”

신구神龜 2년 기해년 신미일이 그 달 첫 날인 2월 ○3일 계유일癸酉日에 대묘大墓에다가 장사지낸다.

 

남경 상산고분군象山古墳群. 동진東晉시대 낭야왕씨 일가 공동묘지로, 그 유명한 왕희지 일족이다. 

 

무령왕 이후에 사용한 례를 본다. 

‘당 고 귀주자사 노공 묘지명 병서 唐故歸州刺史盧公墓誌銘幷序’

唐나라에서 귀주자사歸州刺史를 역임한 노씨盧氏 묘지명과 그 서문이라는 뜻이다. 

“元和己亥歲七月朔旦, 終于官, 九月九日, 葬于邙山大墓

원화元和 기해세己亥歲 7월 삭일 새벽에 관아에서 죽고, 그해 9월 9일에 망산 대묘邙山大墓에 장사지냈다. 
(이로써 보건데 이 사람의 가족공동묘지는 망산에 있었음을 안다. 지금의 낙양 일대 북망산이라는 데다.) 

 

이에서 보이는 북위시대 및 당대에 등장하는 大墓가 모조리 종족 공동묘지임이 명명백백하다.

이로써 무령왕릉 묘권墓卷에 보이는 등관대묘登冠大墓는 등관이라는 지역 혹은 산에 설치한 부여씨 왕가의 공동묘지임이 명명백백하다.


(June 16, 2018) 

 

*** 

 

도홍경은 생존 시기가 사마斯麻 무령왕(462~523)과 거의 겹친다. 사마왕 시대에 대묘가 가족공동묘지라는 뜻으로 사용됐음을 단적으로 뒷받침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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