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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적, 족보, 일기 이야기 (역사인구학)

일제시대 족보 편찬 흔한 풍경

by 신동훈 識 2026. 7.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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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시대 일기를 보면, 

그 당시 족보를 만들던 정황이 적혀 있어 흥미를 끈다. 

모 집안에서 족보를 만들던 시점은 1930년대 중반-. 

일제시대는 이전에 목판으로 찍던 족보가

납활자로 전환하였던 시기이다. 

인쇄가 깨끗하고 제본 등이 폼 나는 대신에, 

가격이 많이 상승한 것 같다. 

그 당시 족보를 만들던 정황이 일기에 적혀 있는데 흥미로운 부분이 있다. 

이 집안은 족보를 만들 때 비용이 넉넉치 않았던 것 같다. 

가장 문제는 수단收單 작업에서 명단을 보내 오고는, [수단이란 단자를 거두어 들인다는 족보 용어다.]

납부해야 하는 비용을 내지 못하는 경우이다. 

이런 경우는 참 난처하겠다. 

명단이 왔으니 뺄 수도 없는데 나 돈 몬냅니다 하고 뒤로 자빠진 것이다. 

그래서 일기를 적은 이가 대금을 받기 위해 후손들을 만나고 다닌 이야기가 있다. 

명단을 보내놓고 돈을 안내면 어짭니까. 회비를 납부하십셔 라는 독촉에 

내가 너무 먹고 살기가 빠듯해서 그렇습니다, 내기는 내겠지만 다 내지는 못하겠습니다, 라고 하니

이런 일은 19세기만 해도 상상도 못할 일이었다. 

당시까지만 해도, 족보를 편찬하는 쪽이 갑이고, 끼어들고자 하는 쪽이 을이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일제시대가 되자 이 관계가 역전되는 모습을 보인다. 

심지어는 일제시대까지도 족보에 끼어들지 못한 어느 산골의 종족이, 

자기들도 이 집안 후손인데, 세조의 계유정난 때 사육신과 함께 내쳐져

그 이후 향촌에서 세거하게 되어 족보에서 누락되었다고 하고, 

그 집안 수백명을 한꺼번에 넣어달라는 요청을 해온 것이다. 

이것이야 말로 증명할 방법도 없고, 그 때문에 집안 안에서는 이 문제로 둘로 나뉘어 넣어줘야 한다는 쪽과 안 된다는 쪽이 나뉘어져 치열하게 싸웠던 모양인데, 

일기에는 분명치 않지만, 결국 족보에 기재가 되었던 것 같고, 

필자가 짐작하기에 그렇게 된 연유로는 족보를 인출하는데 비용이 넉넉치 않았던 것이 큰 이유가 되지 않았을까 한다. 

종족 수백 명이 한 번에 들어오면 납부하는 돈만 해도 얼마나 큰 도움이 될 것인가!!!! 

일제시대 일기는 그 시대가 되면 족보를 만드는 데 있어 

갑과 을이 바뀌어 버린 정황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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