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리나라는 집집마다 족보를 들고 있다.
이것, 어느 정도로 맞는 이야기일까?
왠만큼 유명한 집안의 검증된 후손이 아니라면 누구든 지니는 의문일 것이다.
이에 대해 좀 써 보면,
결론은 천차만별이라고 하는 게 옳다.
한국의 족보와 호적을 연구한 일본 연구자가 있었는데,
그 양반 왈 한국의 족보, 호적과 대조해 보니 의외로 정확하다.
이건 호적에 나와 있는 사람의 족보를 찾아 추적하면 그럴 수 있다고 본다.
필자도 몇몇 경우 살펴 보았는데 호적에 사족으로 기재된 경우
족보를 대조하면 거의 비슷한 기록이 있는 것을 보았으니.
그런데 문제는-.
호적에는 사족으로 기재된 사람 숫자가 많지 않은 것이 문제겠다.
예를 들어 1700년대만 해도 우리나라 남아 있는 호적에서 사족 숫자. 그렇게 많지 않다.
우리나라는 1800년대 중반쯤 되어야 한 집 건너 한 집이 사족 후손인 모양이 완성되지
1700년대만 해도 호적에서 사족으로 확인할 수 있는 사람 숫자가 그다지 많지 않다는 말이다.
훨씬 많은 숫자는 평민이거나 아니면 노비인데,
노비는 호적에 본관은 당연히 없고 성도 없으니 당연히 족보도 없겠다.
이 노비와 평민 숫자가 1700년대만 해도 절반을 훌쩍 넘어 거의 80프로 이상에 육박하니
지금 족보를 가지고 있는 사람 상당수가 1700년대 조상을 따라 가면 이들의 후손일 것이니,
결론적으로 호적에서 사람 이름을 찾아 족보를 추적하는 게 아니라,
족보를 가지고 호적에서 역으로 추적하는 것이 가능했다면
(이것이 원천적으로 불가능하다는 이야기는 앞에서 여러 번 썼다. 우리나라 조선시대 호적은 아주 제한적으로만 남아 있다)
지금 들고 있는 족보 대다수는 엉터리일 것이기 때문이다.
호적이 없더라도 족보가 어느 정도로 맞는 것인가 하는 문제는
만약 그 집안 족보가 임진왜란 이후부터 비정기적이나마 최근까지 4-5차례 편찬되었다면
옛 족보를 추적하면 어느 정도는 알 수 있다.
특히 우리나라 족보는 1800년대 후반이 되면 거의 지금 족보 틀이 완성되는데,
1800년대 초반 족보와 후반 족보가 차이가 많다.
실제로 족보 분량이 크게 늘어나는 시점도 대략 이때쯤인데다가,
1800년대 초반만 해도 족보를 편찬하는 쪽에서 추가로 입보하는 이들에 대한 평을 족보에 꼼꼼이 적어둔 경우가 많아
(이 집안은 지금 들어오는데 정말 맞는지 알 수 없다는 취지의 글을 남긴다)
대략은 짐작 가능하다.
물론 이렇게 족보 대조를 통해 변개를 추적할 수 있다고 해도 백프로 확신할 수는 없다.
가장 확실한 방법은 족보와 조선시대 호적을 대조하는 것인데,
이것이 가능한 사람은 아마 우리나라 전체 인구에서 5-6프로를 넘지 않을 것이다.
우리나라 조선시대 호적이 대부분 사라지고 몇몇 시군만 간신히 남아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조상들이 그 지역에서 대대로 살았던 분들이 아니라면,
족보가 제대로 된 것인지 정확히 파악할 방법을 사실상 없다고 보아도 되겠다.
아 마지막으로 한 가지 써 본다면-.
족보의 벼슬 적어 놓은 것 너무 믿지들 마시길-.
무과 급제도 날조가 많고 심지어 문과 급제도 날조해서 적어놓은 것을 봤는데,
기타 한직 벼슬들은 공명첩 적어 놓은 것도 많고,
아예 그 벼슬들도 날조의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호적, 족보, 일기 이야기 (역사인구학)' 카테고리의 다른 글
| 일제시대 족보가 갑을이 바뀐 이유 (0) | 2026.07.30 |
|---|---|
| 족보의 팽창은 결국 양반수의 급증을 반영한다 (0) | 2026.07.30 |
| [배째!] 일제시대 족보 편찬 흔한 풍경 (0) | 2026.07.29 |
| 우리 생각보다 훨씬 대단한 영조대왕 (0) | 2026.07.28 |
| 국민국가는 공동운명으로 묶인 사람들의 결합체 (0) | 2026.07.27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