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년대 경성트로이카, 반제동맹사건의 좌파 지식인 이관술李觀述(1902~1950), 이재유李載裕(1905~1944) 선생이다.
이 두 사람은 잘 아는 사이로 활동 내역도 서로 얽혀 있다.
먼저 이관술은
보통학교 -- 중동학교 (1925) -- 동경고등사범학교 (1929)
이다.
중동학교였으므로 아마 전문학교 검정시험을 봤을 것 같고,
중동졸업 후 동경고등사범 졸업까지 4년인 것을 보면 1년의 누락 없이 동경고등사범학교까지 졸업한 것이다.
대단한 수재였다고 알려져 있다. 이미 이야기한 것처럼 일제시대 동경고등사범은 동경대보다도 들어가기 어렵다는 학교였다.
육사와 같은 4년제이고 학비 없이 보조금까지 있어 일본 전국의 수재가 많이 몰렸다.
전술한 최규하, 함석헌 양 선생도 이 학교 출신이다.
한편 이재유는:
삼수공립보통학교 (5학년 편입), 자퇴-- 보성고보 편입 (1924), 월납금 미납으로 자퇴-- 송도고보 (1925) 편입 (4학년), 동맹휴학주도로 퇴학-- 일본대학 전문부 사회과 입학 (1926)-- 학비 때문에 곧 퇴학이다.
이재유 프로필은 졸업 학력이 없고 전해지는 것은 모두 편입, 퇴학 기록뿐이라 정확히 전해지는 것인지 판단하기 어렵다.
예를 들어 삼수보통학교 5학년 편입이 가능했는지 모르겠다.
보통학교도 마치지 못한 상태였기 때문에 그 다음 경력인 보성고보, 송도고보 편입도 정확한 기록인지 확신이 어렵다.
경력상 옛날 신문에 나온다면 송도고보 동맹휴학건으로 나올 만한데 기록이 없다.
이재유의 기록은 1925년 고향 삼수에서 농민야학을 열었던 것으로 처음 나오며, 일본 유학 시기와 귀국 후 노동운동 관련하여 다수 기록이 나온다.
본인이 스스로 남긴 기록이 있다면 아마 정확한 프로필을 알 수 있을 텐데 30년대 계속 잠행하며 노동운동을 하다가 해방을 못 보고 죽었기 때문에 기록이 혼선이 있어도 어쩔 수가 없다.
이재유 선생은 해방을 못보고 옥사했으며 이관술 선생은 해방 후 좌익운동으로 검거되어 수감되어 있던 중 한국전쟁 중 총살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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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시대의 지식인: [23] 김수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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