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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동훈의 사람, 질병, 그리고 역사

일제시대의 지식인: [23] 김수환

by 초야잠필 2023. 6.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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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최초의 천주교 추기경 김수환의 일제시대 프로필은 다음과 같다. 

보통학교 (6년)-- 대구 성 유스티노 신학교, 서울 동성상업 을조 (1935-1941) -- 일본 조치(上智)대학 (1941-1944) (문학부 철학과? 예과?) 

의외로 온라인에는 추기경에 대한 프로필이 자세하지 않은데 여러 군데 기록을 긁어모아 보면 위와 같다. 

보통학교 6년 졸업 후 중등과정으로 대구 성 유스티노 신학교를 거쳐 서울 동성상업 을조를 졸업한 것으로 되어 있다. 

동성상업은 목포상업 등처럼 보통학교 6년을 마친 후 진학하는 실업학교였다. 

중등과정에 재학한 기간이 6년으로 1년 정도 더 긴데 이 부분에 대해서는 자세하지 않다. 

당시 동성상업 을조는 가톨릭 사제를 양성하는 기관으로 이른바 "소신학교"였다고 한다. 

김 추기경은 동성상업 졸업 후 일본 유학에 파견되는데 같은 가톨릭 재단인 일본 조치대학에 입학한다. 

김 추기경은 이때 이미 사제의 길을 걷기로 되어 있어 그의 일본 유학은 가톨릭의 지원과 추천으로 이루어졌다. 

그는 당시 중등과정을 마쳤을 뿐이므로 예과나 전문부를 입학해야 했을 것인데, 

조치대학에는 당시 예과와 전문부 모두 있어 어느 쪽에 재학했는지 불명하던 중, 

마침 그가 조치대학의 예과 과정생이었다는 당시 증언이 있어, 처음에는 예과생으로 입학했다가 이어 본과 진학을 한 것으로 보인다 (아직도 생존해 계신 연대 김형석 교수가 당시 조치대학에 김 추기경과 함께 있었다고 한다). 

조치대학에는 총 3년을 재학했는데 이때가 되면 예과와 본과 과정이 각각 2년씩으로 단축되어 있는 시기였을 것이다. 

따라서 1944년 경에는 조치대학 본과 1학년생이었을 가능성이 있다 (가톨릭 쪽 기록에는 김 추기경이 졸업을 1년 남기고 학병에 끌려갔다는 기록이 나와 이와 상응한다). 

1944년에 학병을 끌려가 조치대학 유학은 결국 졸업하지 못하고 끝나버렸는데, 못다한 공부는 해방 이후 한국에서 계속하게 된다. 

조치대학 1호관. 1912년 건립. 조치대학에도 당시 조선인 유학생이 드물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P.S. 1) 그의 학병 경력에 대해서는 이런 저런 말이 많은데 사실 학병으로 끌려갔다는 것만으로 친일 딱지를 붙이는 것은 무리다. 

나중에 기회를 봐서 후술하겠지만, 학병의 경우 최소한 전문학교 재학 이상의 고급 인력들을 대상으로 시행되었기 때문에 이들에게 장교 임관의 기회를 제공한다고 해서 전쟁에 자원할 이유가 별로 없기 때문이다. 아마도 학병 모집은 피하기 어려웠고 강압적이었다는 당시 증언이 옳을 것이라 본다. 

학병을 끌려가면 조선인의 경우 갑종 장교로 임관하거나 아니면 사병이 되었는데 김수환은 후자였다. 남양군도 어딘가로 끌려가 그곳에서 해방을 맞았다고 알고 있다. 그로서는 생사기로에 섰던 절체절명의 시기였다 할 것이다. 
 
P.S. 2) 대개 종교인의 경우 세속의 학벌이 중요치 않다고 생각해서인지 프로필이 자세하지 않다. 이것은 불교계도 마찬가지로 스님이 되기 전 기록이 매우 부실한 경우도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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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시대의 지식인: [21] 박헌영과 [22] 김달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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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준혁에 이어 이제 일제시대의 좌파 지식인에 대해 써 보겠다. 남로당계와 북로당계를 나누어 쓴다. 이 두 계열은 많은 차이가 있지만 가장 큰 차이 중 하나로 교육경력의 차이를 무시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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