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시, 계절의 노래(190)
가을 저녁 누각에 올라(秋晚登樓)
[淸] 축열림(祝悅霖) / 김영문 選譯評
바야흐로 비 개어
기쁘게 발 걷으니
골목에는 구름처럼
나락가리 쌓인 가을
자주색 기러기 한 번 울자
붉은 잎 떨어지고
석양 속 한 사람
죽서루에 기대 있네
卷簾恰喜雨初收, 村巷雲堆粳稻秋. 紫雁一聲紅葉落, 夕陽人倚竹西樓.
옛날 시골 가을 풍경 중 하나는 집집마다 낟가리를 쌓는 일이었다. 논에서 베어낸 벼를 한 단 한 단 묶어서 사람이 지게로 져서 나르거나 소 지르마로 실어서 날랐다. 자기 집 마당이나 공터에 벼를 차곡차곡 쟁여서 높다랗게 쌓아 올리고 타작할 때까지 그렇게 보관했다. 어릴 때 작은 지게로 벼를 져 나를 때는 어깨를 눌러오는 무게 때문에 힘들기도 했지만, 다른 아이들보다 한 단이라도 더 지려고 애를 쓰기도 했고, 그렇게 져 나른 나락이 대형 탑 같은 낟가리로 변하는 걸 보면 나도 모르게 뿌듯한 마음이 들기도 했다. 지금은 트랙터로 벼를 베면서 바로 타작을 하기 때문에 이런 풍경을 볼 수 없다. 이 시의 전반부는 그런 시골 가을 풍경을 묘사했다. 후반부는 매우 유명한 일화와 관련이 있다. 시대를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당나라 조하(趙嘏)는 「장안의 늦가을(長安晩秋)」이라는 시에서 “별 몇 점 깜박일 때 변방 기러기 길게 날고, 한 줄기 피리 불며 누각에 사람 기대 있네(殘星幾點雁橫塞, 長笛一聲人倚樓)”라고 노래했다. 같은 시기 유명한 시인이었던 두목(杜牧)은 이 시구에 탄복하며 조하를 아예 ‘조의루(趙倚樓)’로 불렀다. 가을 풍경을 묘사한 한시 가운데 시각과 청각이 절묘하게 어우러진 명구라 할 만하다. 이후 이 시구는 가을 정취를 드러내는 작품에서 많은 시인들에 의해 차용되거나 변형되었다. 조하는 명구 한 연(聯)으로 천고에 이름을 남겼다. 이제 기러기 소리에 붉게 물든 나뭇잎이 떨어지면 귓전을 스치는 가을바람 소리조차 스산한 피리소리로 들릴 터이다. 그런데 피리소리는 왜 애잔하고 구슬플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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