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시, 계절의 노래(270)
봄맞이 노래[迎春曲] 둘째
[明] 팽손이(彭孫貽) / 청청재 김영문 選譯評
경주
누구 집 허리 가는
아가씨인지
봄놀이 노랫가락
다퉈 부르네
붉은 저고리로
얼굴도 안 가리고
놀러 나온 총각을
슬쩍 돌아보네
誰家細腰女, 競唱踏春詞. 紅衫不掩面, 微盻冶遊兒.
경주 교동
겨울이 끝나고 봄이 오면 바야흐로 청춘남녀 풋풋한 사랑이 시작된다. 사랑에 특별한 계절이 있을 리 없지만 그래도 햇살이 따뜻한 봄이 되면 나물 캐기, 꽃놀이, 뽕따기 등 야외활동을 통해 젊은 남녀가 만날 기회가 잦아진다. 나른한 햇볕과 온화한 봄바람은 겨우내 얼어붙은 처녀 총각 마음을 녹여 쉽게 사랑을 시작하게 한다.
“개구리밥 뜯으러 남향 시냇가로 가네, 마름풀 뜯으러 저 길가 개울로 가네(于以采蘋, 南澗之濱. 于以采藻, 于彼行潦)”(『시경·소남(召南)』 「채빈(采蘋)」)
경복궁
얼음 녹은 시냇가에 사람과 가축이 먹을 수 있는 물풀이 새파랗게 돋는다. 개울가는 사랑이 모이는 야외 클럽으로 변한다.
“도꼬마리 뜯고 뜯어도, 바구니에 차지 않네. 아 내 님 그리워, 저 큰길 위에 바구니 던져버리네(采采卷耳, 不盈頃筐. 嗟我懷人, 寘彼周行.)”(『시경·주남(周南)』 「권이(卷耳)」)
대전 국립문화재연구소
저 들판과 산기슭에도 달래, 냉이, 씀바귀가 돋아난다. 봄나물 뜯는 처녀 마음엔 조바심만 가득하다. 개울 건너 멋진 님은 왜 나타나지 않나? 마음이 콩밭에 있으니 나물바구니가 쉽게 찰 리가 없다.
“앵두나무 우물 가에 동네 처자 바람 났네, 물동이 호미 자루 나도 몰래 내던지고.”
사랑 앞에 바구니, 물동이, 호미가 무슨 대수랴? 모두 내팽개칠 수밖에 없다.
붉은 저고리로 한껏 멋을 낸 봄 아가씨들은 고운 봄노래를 부른다. 서로서로 뒤질세라 예쁜 목소리를 더욱 높인다. 봄나들이 나온 봄 총각들도 흘끗흘끗 노래 부르는 아가씨들에게 눈길을 보낸다. 아가씨들도 그런 사랑의 눈길을 외면하지 않고 슬쩍슬쩍 총각들을 돌아본다. 봄은 본능이 수줍음을 이기게 만드는 계절이다.
봄바람은 그렇게 온 천지를 사랑으로 가득 채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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