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시, 계절의 노래(272)
청매화[綠萼梅]
[宋] 왕지도(王之道) / 김영문 選譯評
윤기 나는 천연 옥이
미세하게 향기 내며
담담하게 화장하고
동풍에 몸 기울였네
하지만 꽃샘추위
여전히 사납지만
새벽 창에서 그래도
초록 치마 입어보네
天然膩玉細生香, 斜倚東風佇淡妝. 可是春寒猶料峭, 曉窗猶試綠羅裳.
매화는 종류가 얼마나 될까? 매우 다양하다. 색깔에만 따르면 백매(白梅), 홍매(紅梅), 흑매(黑梅), 황매(黃梅), 청매(靑梅) 등으로 나눌 수 있다.
백매는 흰 매화로 가장 널리 분포한다. 홍매는 다시 분홍색과 빨간색으로 나뉜다. 내가 본 분홍색 매화 중 일품은 백양사 고불매이며, 빨간색 매화 일품은 통도사 자장매다. 흑매는 홍매의 색깔이 짙어서 검붉은빛을 띠는 매화다. 화엄사 화엄매가 그렇다. 황매는 납매(臘梅)라고도 부르며 매화 이름이 붙은 꽃 중에서 가장 일찍 핀다. 보통 음력 섣달에 노란 꽃을 피우므로 섣달 납(臘) 자를 써서 납매라 부른다.
얼마 전 장성 땅 기호철 선생이 환상적인 납매 사진을 보내줬다. 청매는 가지와 꽃받침이 청록색이고 꽃은 흰색 또는 청백색이나 녹백색이다. 매우 청신하고 순수한 느낌을 준다. 꽃받침이 청록색이므로 녹악매(綠萼梅)라는 이름도 많이 사용한다.
이 시 녹악매에서 시인은 가볍게 화장한 미녀가 백옥 같은 얼굴로 초록색 비단 치마를 입고 은은한 향기를 발산하며 봄바람에 기대섰다고 비유했다. 둘째 구 저담(佇淡)은 글자 순서를 바꿔 담저(淡佇)로 더 많이 쓰인다. 평측을 맞추기 위해 순서를 바꾼 듯하다. 화장이 옅고 정숙(靜淑)하다는 뜻이다.
셋째 구 요초(料峭)는 산이 자못 가파르거나 추위가 꽤 사납다는 의미다. 마지막 구 시(試) 자가 오묘하다. 지금도 중국 옷가게나 신발가게에 들어가서 “좀 입어 봐도 될까요?” “좀 신어 봐도 될까요?”라고 물을 때 보통 “커이스스마?(可以試試嗎?)” 또는 “스스, 커이마?(試試, 可以嗎?)”라고 한다. 초록색 비단 치마를 시험삼아 입어본다고 했으므로 ‘새로운 시도’라는 뉘앙스가 은근하게 내포되어 있다.
보통 매화는 백매, 홍매, 황매 등인데 이런 부류와 다른 초록색 비단 치마를 입고 나름의 특색과 독자성을 추구한다는 어감이 드러난다. 송나라 주익(朱翌)도 같은 제목의 시 「청매화(綠萼梅)」에서 “부화뇌동 하려 하지 않고 스스로 일가 이뤄, 청록색 치마 입고 물가에 홀로 섰네(不肯雷同自一家, 靑裙獨立水之涯)”라고 읊었다.
청매화는 실로 새로운 색채 스타일을 주도하는 패션계 총아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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