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평 표산 고분군서 제사용 그릇받침·동전 문양 도자기 등 확인
김예나 / 2022-11-22 15:49:16
24일 발굴조사 성과 공개…"'백제화' 변화 과정·대외교류 해석 자료"
https://k-odyssey.com/news/newsview.php?ncode=179563964531094
이번 조사 성과를 추린 보도는 앞에 첨부하는 우리 공장 기사를 참조하라 하고 싶고, 우선 이번에 발굴한 데를
전남 함평군 학교면 마산리 산 16-2번지
라 하니, 이 지점을 찾아봐야 한다. 호남 쪽 이런 발굴성과를 대할 적에 특히 유념해야 하는 대목은 바다랑 관계가 어케 되냐다. 다시 말해 해안 쪽인가? 아니면 그에서 상당히 들어간 내륙지점인가? 이런 우선 판별해야 한다. 다만 이 경우도 조심할 대목은 잦은 간척으로 지금의 그 지점이 곧 해당 유적이 등장한 바로 그 시기 지형인가 아닌가는 또 다른 문제가 된다.
전체 한반도라는 관점에서 보면 언뜻 바다 인접지점인 듯하다. 하지만....
좀 더 확대해 보면 서해에서 가깝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바로 앞이 바다라고 보기는 힘들다. 더 자세히 보자.
어느 정도 간척이 이뤄졌는지는 모르겠다. 바다에서 상당히 가까웠을 느낌은 있다. 평지 양태로 보아 얕은 구릉성 산지가 보이기는 하지만, 그 아래위 교통로를 통해 그대로 바다에 닿지 않았나 한다.
이는 저 지점에서 이번에 발굴했다는 무덤 주인공들이 아득히 먼 삼국시대 어느 시점에 바다를 생업으로 삼았을지? 혹은 그런 배후를 낀 농업 중심 사회 수장층이었는지를 판별할 때 고려해야 하지 않나 싶다.
더 땡겨 살피니 대륙 지향이다. 단, 이 내륙지향이 바다를 뺄 수는 없을 성 싶다.
암튼 저짝에 있는 삼국시대 무덤을 파제낀 모양이라 국립나주문화재연구소 조사 성과 전문은 아래와 같다.
함평 마산리 표산고분군 발굴조사 성과 공개
- 국립나주문화재연구소, 24일 오전 10시 30분 현장공개 -
문화재청 국립문화재연구원 국립나주문화재연구소(소장 방인아)는 오는 24일 오전 10시 30분 함평 마산리 표산고분군 발굴현장에서 올해 3월부터 이달까지 9개월 간 진행한 2차 발굴조사 성과와 출토 유물을 공개한다.
* 발굴현장: 전남 함평군 학교면 마산리 산 16-2번지
함평 마산리 표산고분군은 1984년에 도굴된 상태로 처음 알려진 고분군으로, 구릉 정상부에 장고분인 1호분을 포함해 총 15기의 고분이 모여 있다. 이 고분군은 영산강유역에 분포하는 장고분 중에 유일하게 군집을 이루고 있고 옹관 핵심 분포권인 나주 복암리 고분군과 가까운 거리에 위치해 많은 관심을 받아왔다.
* 장고분 : 장고 모양을 닮은 고분, 사다리꼴(方部)과 원형(圓部)을 붙여놓은 형태로 전방후원분(前方後圓墳), 전방후원형 고분, 장고형 고분으로도 불리는 무덤 형태
이에 국립나주문화재연구소에서는 함평 마산리 고분군 내에 분포하는 개별 고분들의 구조와 축조방법, 조영 순서를 밝혀 유적 경관을 복원하고, 보존·활용 방안을 마련하기 위해 지난해부터 연차적으로 정밀발굴조사를 추진 중이다.
이번 조사를 통해서는 1호분(장고분) 봉분과 함께 고분 주위 도랑시설의 형태 및 1호분과 인접한 4호분·5호분·6호분의 구조와 축조방법을 확인하는 성과가 있었으며, 유리옥과 은으로 만든 장신구, 일본·중국계 유물 등 새로운 자료들도 확보했다.
먼저, 1호분은 봉분을 비롯한 고분 구조가 비교적 잘 남아있었다. 봉분 규모는 길이 46m, 너비 14~28m, 최대높이 6.2m 내외이며, 평면은 장고 모양으로, 외곽을 따라 방패모양 도랑을 둘렀다. 고분 위에는 돌을 얇게 깐 시설과 사다리꼴 분구에 오를 수 있는 출입로를 갖췄으며, 이러한 시설들은 각각 인근의 함평 신덕고분과 광주 월계동 장고분에서도 확인된 바 있다.
매장시설은 길이 5.3m, 너비 2.8m, 높이 2.9m인 사각형 널방 가운데에 길이 3m 내외의 입구가 달린 돌방 구조로, 전문도기(錢文陶器), 뚜껑 있는 접시와 제사용 그릇받침 등이 출토되었다.
* 널방(玄室) : 무덤 속의 주검이 안치되어 있는 방
* 전문도기(錢文陶器) : 표면에 동전모양 문양이 새겨진 중국 도자기
1호분 주변에 조성된 4·5·6호분은 1호분과 달리 평면이 원형이며, 외곽을 따라 도랑을 둘렀다. 고분 규모는 각각 직경 10m~13m 내외의 소형이며, 세 고분 모두 도굴로 인해 매장시설이 완전히 파괴되었거나 일부만 잔존한 상태로, 매장시설의 구조는 사각형 널방 가운데에 입구가 있는 돌방이다.
특히 1호분의 장축선상에 위치한 6호분의 고분 배치 형태는 함평 신덕고분에서도 동일하게 확인된 배장묘(중앙 무덤 곁에 만드는 종속적 무덤)의 성격으로 추정된다. 또한 돌방 입구 주변에 토기를 세우고 함께 묻어 제사를 지낸 흔적도 조사되었다. 유물은 고분 주위 도랑 시설, 뚜껑 있는 접시와 제사용 그릇받침, 전문도기(錢文陶器), 스에키계 항아리, 은 장신구, 유리 옥 등이 출토되었다.
* 돌방: 석재를 쌓아 만든 무덤의 매장시설
* 스에키(須惠器) : 가야 토기의 영향을 받은 일본 고분시대 토기
이번 조사는 마한 유적이 밀집한 함평 일대가 웅진기 후반~사비기 초에 백제화되는 과정에서의 변화 양상과 대외교류상을 종합적으로 해석해볼 수 있는 자료를 확보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향후 이어질 학술조사를 통해 유적의 성격을 보다 명확히 밝히고, 고대 영산강유역 세력의 변화를 규명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더 자세한 발굴조사 성과는 오는 24일 오전 10시 30분 현장설명회에서 확인 가능하며, 누구나 별도 신청 없이 현장설명회에 참여할 수 있다. 또한 발굴조사 성과는 오는 28일 국립문화재연구원 유튜브 채널(https://www.youtube.com/@nrichstory)을 통해서도 공개될 예정이다.
문화재청 국립문화재연구원 국립나주문화재연구소는 앞으로도 영산강유역 고대문화권의 중추적 연구기관으로 학술적 가치가 높은 지역 문화유산의 체계적인 조사연구와 보존을 위해 노력하는 한편, 적극행정의 일환으로 국민소통을 통해 우리 문화유산의 가치를 알려나갈 예정이다.
우선 이 표산고분군이 구릉 정상부를 중심으로 그 아래쪽으로 포진한 모양이라, 보통 이런 데는 볼짝없이 종족 묘지라, 그 가문 시조 혹은 중시조 같은 사람이 대빵이라 그 맨꼭대기 사방을 조망하는 지점에 자리를 잡고 그 아래쪽으로 그 후손 무덤이 밀집할 수밖에 없으니,
이곳 또한 공중에서 내려다 볼 적에 악기 중 하나인 장고를 닮았다 해서 장고분이라 일컫는 1호분을 필두로 총 15기에 이르는 무덤떼가 확인됐단다. 이를 평가하기를 "영산강유역에 분포하는 장고분 중에 유일하게 군집을 이루고 있고 옹관 핵심 분포권인 나주 복암리 고분군과 가까운 거리에 위치해 많은 관심을 받아왔다"고 한다.
일단 그렇구나 하고 믿어주면 된다.
이번 조사 결과 1호 장고분 봉분과 함께 일본 고고학계 용어를 그대로 빌려와 쓰는 이른바 주구周溝라는 무덤 주변 도랑 시설이 어케 생겨먹었는지를 확인하는 한편, 이 무덤 바로 옆 4호분·5호분·6호분도 같이 파제껴 그것이 어떤 모양이며 어케 만들었가를 확인했단다. 우리 고고학은 어케 매양 토기 아니면 축조기술에 그리 매달리는지 모르겠다만 암튼 그렇댄다.
출토 유물로는 유리옥과 은으로 만든 장신구, 일본·중국계 유물이 있다는데, 이를 액면 그대로 취신하면 이 지역 특징이기도 하고, 또 앞서 말했듯이 서해라는 바다를 통한 대외 교류 창구라는 그 지정학 특징에서 유래한다 하겠다. 암것도 아니니 괜치 주눅들 필요 눈꼽만큼도 없다.
구체로 보면 장고분, 일본에서는 전방후원분前方後圓墳이라 일컫는 1호분을 팠다! 봉분도 잘 남았고 여타 다른 시설도 비교적 온전히 드러났댄다. 봉분은 남아 있는 기준으로 길이 46m, 너비 14~28m, 최대높이 6.2m 안팎이라니 꽤 큰 규모다.
그 외곽으로는 공중에서 보면 방패를 닮은 모양으로 도랑을 둘렀댄다.
"고분 위에는 돌을 얇게 깐 시설과 사다리꼴 분구에 오를 수 있는 출입로를 갖췄"다고 하는데, 고분 위? 봉분 위를 말하는가? 아니면 묘역 전체로 보아 그렇다는 건가? 이는 그네들이 배포한 사진을 봐야 한다. 아무튼 이런 시설은 인근 함평 신덕고분과 광주 월계동 장고분에서도 있었댄다.
봉분 아래 매장시설, 보통은 현실玄室이라 하는데, 암튼 시체를 묻는 그 공간은 길이 5.3m, 너비 2.8m, 높이 2.9m인 사각형 널방을 안치하고 설라무네 그 앞쪽에다가 길이 3m 정도인 출입로가 있댄다. 당연히 돌로 쌓았겠지?
이에서 전문도기錢文陶器라 해서 이른바 동전 무늬를 찍은 중국 수입산이라는 거무틱틱 도자기가 발견되고 뚜껑 있는 접시와 제사용 그릇받침도 수습했단다. 이 동전 무늬새김 도자기는 대략 10년이 넘은 어느 시점 어디더라? 같은 전남 어느 땅 비슷한 시대 동신대 이정호 선생이 판 그 무덤에서도 출입로인가에서 와장창 깨친 채 출토된 그것을 본 적이 있다.
주변 무덤과 양상을 보면 그 주변에 포진한 4·5·6호분은 1호분과 달리 평면이 원형이라는데, 무엇을 기준으로 원형이라는지 모르겠다. 아마 장고분 형태가 아니라 이건 동그랑땡이다 그런 뜻 같다. 다만 그 동그랑땡 무덤 주변으로 도랑을 판 점은 같다.
주변 무덤은 봉분 기준으로 각각 지름 10m~13m 안팎이라 볼짝없이 중국에서는 배장묘라 일컫는 딸린 무덤일 것이로대 1호분 대빵에 묻힌 사람 가족 구성원이거나 그 신하였을 것이다.
이 딸린 무덤 세 곳은 모조리 극심한 도굴 피해를 봤다. 아까비!!! 시체를 묻는 공간은 사각형이고 그 가운데 한쪽에다가 출입로를 마련했단다.
조사단은 "특히 1호분의 장축선상에 위치한 6호분의 고분 배치 형태는 함평 신덕고분에서도 동일하게 확인된 배장묘(중앙 무덤 곁에 만드는 종속적 무덤)의 성격으로 추정된다"고 했는데, 앞서 배장묘 얘기는 내가 끄집어 냈다.
아마 1호분 얘기로 다시 돌아간 듯한데(보도자료 조금 문제 있다. 왔다갔다 한다) 돌방 입구 주변에다가 토기를 세우고 함께 묻어 제사를 지낸 흔적도 확인됐다는데 뭐 무덤에 넣은 그릇들이 제사용 아닌 게 있는가? 한국고고학도들 참말로 알다가도 모르겠다.
이 무덤떼를 조사단은 "웅진기 후반~사비기 초에 백제화되는 과정에서의 변화 양상과 대외교류상을 종합적으로 해석해 볼 수 있는 자료"라고 평가하는 것으로 보아, 웅진시대 폐막이 536년인가? 그러니, 무덤을 만든 시기는 대략 500년대로 보는 듯하다.
그나저나 이 무덤떼를 표산 고분이라 한다는데 표산은 혹 瓢山 아닌가? 박 모양? 장고형 고분 혹은 전방후원분이 꼭 박 모양이긴 한데?
1호분은 조금 상세히 정리하면 아래와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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