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사의 전시과제도와 일본사의 장원정리령은 율령제의 붕괴과정에서 산출되어 나오는 토지의 사적소유를 억제하고 토지공전제로 돌아가고자 하는 기득권의 시도에서 나왔다는 이야기를 하였다.
그런데 여기서 중요한 차이가 있다.
일본사의 장원정리령은 토지공전제를 침탈하는 장원의 확대를 막는 덴노의 명령으로-. 다분히 수세적이고 방어적으로 이루어졌지만,
한국사의 전시과제도는 상당히 공격적으로 이전에 분출되어 나온 나말여초의 호족의 발호를 일거에 일소하고 토지공전제를 고려 국초에 확립하는 모습으로 나타났다는 말이다.
이러한 차이는 왜 나타나는 것일까?
필자는 이 차이야 말로 한국사와 일본사의 바탕에 흐르는 가장 큰 차이-.
결국 한국사는 일본사보다 대륙으로부터의 침략에 보다 취약하여 공전제를 유지하여 막대한 군사력을 국가단위로 유지하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과 관련이 있다고 본다.
쉽게 말해서-.
한국사에서는 일본사처럼 장원정리령이란 다분히 수세적인 반동명령이 아니라, 전시과제도라는 공격적인 토지공전제로의 복귀를 택하지 않을 수 없었던 이유는-.
결국은 고려 초, 북방으로부터의 군사적 위협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특히 전시과제도의 정비와 거란의 침입이 거의 동시기에 이루어진것은 생각하게 하는 바가 많다.
거란의 침입으로 막대한 병력을 국가단위로 유지하지 않을수 없었는데 이런 경제적 기초는 결국 공전의 창출 외에는 방법이 없었다는 뜻이다.
고려는 전시과제도로 공전을 창출함으로써 이를 통해 수십만의 병력을 유지한것이다.
한국사에서 (심지어는 지금까지도) 국가권력, 공적 소유에 대한 집착이 강한 경향이 보이는 것은
상당 부분 외침의 가능성에 대한 우려 때문이다.
이는 조선시대에도 마찬가지로, 국초에 과전법이 성립한 것은 결국 외침의 가능성 때문이었다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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