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사에서 무가정권은 율령제-공전제를 부수면서 출현하였다고 하였다. 그리고 그 첫 단추가 바로 무사단이라 하였다. 그 무사단이 한국사에서는 라말여초의 호족에 상응한다고 하였다.
일본사에서도 율령제-공전제를 부수고 성장하는 무가정권에게 순순히 기존 권력이 자리를 내준 것이 아니었다. 이들은 수시로 공전제로의 복귀를 희망하였는데 그러한 시도는 모두 덴노의 "장원정리령荘園整理令"이라는 모습으로 나타났다.
장원정리령은 쉽게 말해서 토지의 사적 소유인 장원을 공전제로 되돌리자는 시도였다 할 수 있다.
덴노의 장원 정리령은 서기 10세기초부터 12세기 중엽까지 수시로 내려왔는데, 모두 장원을 억제하기 위해 시도된 것이었다.
아래는 일본사에 보이는 장원정리령이다.
延喜の荘園整理令 902年(延喜2)醍醐天皇 この整理令以後の荘園を「格後の荘園」と呼び、整理の対象にした。
永観の荘園整理令 985年(永観2)花山天皇 延喜整理令以後のものを整理
長久の荘園整理令 1040年(長久元)後朱雀天皇
寛徳の荘園整理令 1045年(寛徳2)後冷泉天皇 前任の国司の在任中に立てた荘園だけ停止。
天喜の荘園整理令 1055年(天喜3)後冷泉天皇
延久の荘園整理令 1069年(延久元)後三条天皇
承保の荘園整理令 1075年(承保2)白河天皇
寛治の荘園整理令 1093年(寛治7)白河天皇
康和の荘園整理令 1099年(承徳3)堀河天皇 新立の荘園の停止(同年、康和と改元)。
天永の荘園整理令 1111年(天永2)鳥羽天皇
保元の荘園整理令 1156年(保元元)後白河天皇 荘園で使役できる農民の数を制限、「保元新制」。
호겐의 난(일본어: 保元の乱): 1156년
헤이지의 난(일본어: 平治の乱): 1159년
이 장원정리령을 놓고 우리의 "전시과제도"를 보면 전시과제도가 달리 보일 것이다.
경종 1년(976년): 시정전시과始定田柴科
목종 1년(998년): 개정전시과改定田柴科
문종 30년(1076년): 경정전시과更定田柴科
무신정변: 1170년
한마디로 한국사의 "전시과제도"는 일본사의 "장원정리령"과 동일한 역사적 의미를 갖는다는 말이다.
'신동훈의 사람, 질병, 그리고 역사' 카테고리의 다른 글
전시과와 장원정리령: 그 한 끗 차이란? (1) | 2023.05.23 |
---|---|
무신정변武臣政變과 헤이시정권平氏政権 (0) | 2023.05.22 |
라말여초의 "호족"과 일본사의 "무사단" (1) | 2023.05.21 |
세이와 겐지 [清和源氏, 청화원씨] (0) | 2023.05.21 |
도전과 응전으로만 점철한 한국사 (0) | 2023.05.20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