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점제현 신사비라는 요물 말이다.
신동훈 박사와도 나눈 이야기만, 이 비는 한사군 중 낙랑군, 그것을 구성한 여러 현 중 점제현과는 눈꼽만큼도 관계없다.
비문 구성, 서체, 비석 모양 등등 모든 면에서 이 비는 국강상광개토지평안호태왕, 약칭 광개토왕 혹은 장수왕 무렵 고구려가 세운 비석이다.
저 비석, 광개토왕비랑 서체도 같고, 그 글자 중 두 줄에 걸쳐 대가리 하나가 들어가는 것도 광개토왕비랑 같다.
저것이 왜 낙랑비로 둔갑했는지 내가 알다가도 모르겠다.
실제 비문 어디에서도 이것이 한사군과 관련한 내용이 없다.
대가리 하나에 글자 두 줄이 들어가는 금석문은 오직 소위 이 점제현비와 광개토왕비 두 개가 있을 뿐이다.
저게 중국비석?
중국에서 저딴 비석 본 적이 나는 없다.
있는 놈 나와봐!
***
이는 2017년 12월 16일 내 페이스북 글이라 아마 관련 글들은 이미 이 THE HERITAGE TRIBUNE에 전재되었을 것이다.
다만 저에 대한 다른 분 생각들이 제대로 반영은 안 된 듯해서 이참에 그것까지 보강한다.
같은 날 저걸 이어 나는 다시 다음과 같은 글을 실으면서 관련 도판을 첨부했다.
東漢시대 비석 두 종류다.
모두 하남성 정주 하남박물원 소장품이다.
중국 비석 이렇다.
봐라!
어디 점제현 신사비 같은 게 있단 말이고?
또 같은날 다음 글과 도판을 게재했다.
중국 산서성 태원의 순양궁이라는 도관 소장 금석문 중 소위 관구검 일족 기념비다.
이한상 선생이 들여다 보는 비석이 바로 그것이다.
봐라.
이게 바로 중국 비석들이다.
어디에 점제현 신사비 같은 게 있단 말이고?
또 같은 날 다시 글과 첨부한다.
진 시황제 각석들이다.
봐라.
어디 점제현 신사비와 비슷하단 말이고?
없다.
점제현 신사비랑 통하는 중국 금석문은 이 지구상 어디에도 없다.
오직 하나만 있을 뿐이다.
광개토왕비다.
같은 날 또 다른 내 글이다.
비석에 글씨를 대가리만하게 크게 쓰고,
돌덩이를 큰 걸 가져다 쓰는 까닭은
첫째 힘 자랑
둘째 가독성 문맹률 때문이다.
광개토왕비는 둘 다 해당하고
점제현 신사비는 후자 때문이다.
건립 주체 밝혀졌다.
고구려다.
구체적으로는 광개토 장수왕 무렵이다.
이런 점에서 한국사에서 진정한 중국식 비석의 창시자는 진흥왕 순수비다.
이 비석은 모양도 그렇고, 문장도 그렇고 완연한 중국식이다.
왜?
천신을 제사하는 비석이기 때문이다.
저와 같은 글들에 제기된 의문이나 반론 혹은 보강 중 유의미한 것들을 추린다.
첫째, 저 비문에 보인다는 점제현이 낙랑군 소속이 아니라 고구려 당시 현 이름으로 볼 근거가 있는가 라는 제기가 있었으니 나는 다음과 같은 요지로 말했다.
점제가 사기 조선전이나 한서 조선전에 나오는 이름이라 해서 그리 본 듯하고, 실제 저 비석 판독을 보면 그게 점제현인지 뭔지 아리송송하다.
점제라는 지명은 순수 한문이 아니라 현지 차용어다. 뜻 글자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낙랑이라는 글자 자체도 뜻 글자가 아닐 가능성 99%다. 다시 말해 낙랑은 현지 차용어일 거다. 현도 역시 마찬가지다.
임둔만 뜻 글자일 가능성이 있는데 이것도 안심 못 한다.
낙랑 진번 임둔 현도는 모두 현지 지명 차용이며, 한나라가 장악한 이후 본래 지명을 그대로 사용한 거다.
낙랑이 한 무제 이후 느닷없이 등장한 지명이 아니라는 뜻이다.
간단히 말해 낙랑은 위만조선 시대 혹은 그 이전에도 있었던 지명이다. 이 심각성을 아무도 생각 안하는 듯하다.
곧 점제라는 지명이 설혹 비석에 보인다 해도 그걸 근거로 낙랑시대 유물이라고 자동 보장하는 것은 아니다.
둘째 이정우 선생 일련의 댓글 중에 음미할 만한 데가 많다. 그 주요한 대목을 추린다.
암석 재질이 달라 다른 데서 가져왔을 것이란 이야기도 있던데, 옮기는 것은 차량이 있어야 가능할 것 같고, 비문 안에 그 지방 이야기가 나온다면야 뭐 옯긴게 아니겠군요. 다만 시간상 낙랑시기가 아니여야 할 뿐.
□立□山神祠刻石,辭曰:□平山君,德配代嵩,承天幽□, 이렇게 해놓았네요. 중국애가.
이것이 고구려비고 단군이랄지 그에 준하는 산신의 정보를 담고 있음을 밝히는 것은 의미가 클 것입니다. 다만 그렇다하더라도 점제현이란 단어가 나온다는 것은 그곳에 한사군이 있었다가 후에 고구려가 차지한 후에도 그냥 과거 지명을 사용한 때문일 가능성이 크므로 결국은 한사군이 그 곳에 있었다는 증거이지 재야사학 주장대로 한사군 never existed there는 아니겠네요.
屬國은 누굴 말하는 걸까요? 낙랑인이 토착인을 부른 것? 고구려인이 토착인을?
昆平山君의 위엄이 천둥 번개와도 같다고 하니, 서양으로 치면 Thor 같은 신이였나 보군요.
여러 사람이 결자를 각자 추정했는데, 그중 다음 게시물을 보고 그냥 집어넣어 보았습니다. 주007에 "李丙燾는 昆平山君을 原住民사회의 土俗山神으로 보고"라는 말.
http://db.history.go.kr/item/level.do;jsessionid=ED2C7160071335EAC7A0761F3EDC16CC?levelId=gskr_003_0010_0010_0030
일본사람은 蝉을 쓰기도 하고.
여기에 동한의 각석문자 예가 나오는데 200개나 되는가 보죠. 그런데 神祠에 관련된 것은 이 페이지에서는 점제현 평산군비밖에 없네요. #200. 한자는 읽는 사람마다 다른 것 같고요. 이 블로그 주인은 光和元年으로 읽었네요.
http://blog.sina.com.cn/s/blog_60f46bc10102dylu.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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