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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은 문명이 발달해 아무리 외진 시골이나 먼 변두리 마을에 살더라도 성인이나 현인이 되기에 큰 어려움이 없다. 그러나 우리는 서울 사대문에서 몇 리만 떨어져도 아득한 태고적처럼 원시사회다. 하물며 멀고먼 시골은 어떠하랴? 무릇 사대부 집안은 벼슬길에 오르면 서둘러 산기슭에 셋집을 얻어살면서 선비로서의 마음가짐을 잃지 않아야 한다. 혹시 벼슬에서 물러나더라도 재빨리 서울 근처에 살며 문화의 안목을 떨어뜨리지 말아야 하니 이것이 사대부 집안의 법도다."
유배지에서 다산 정약용이 아들에게 보낸 편지 한 구절이다. 원문을 대조하지 않고 누군가의 번역을 옮긴다. 원문이 없으니 대조가 불가능하다.
다산...요즘 태어났으면 재빨리 미국으로 날랐을듯..
거기서 원정출산도 했을 듯
왜 중국이었을까? 그것이 단순한 환상이었을까? 아니면 사대주의일까? 큰물에 대한 동경이라고 나는 본다. 국제무대에서 뛰고 싶다는 열망. 그 무대에서 인정받고 싶다는 욕망의 표출이라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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