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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EWS & THESIS

정선 매둔동굴 발굴성과

by taeshik.kim 2019. 9.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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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둔동굴...안에서 밖을 바라본 장면이다.



연세대학교박물관이 2016년 이래 연차 조사를 시도 중인 강원도 정선군旌善郡 낙동리樂同里 매둔동굴梅屯洞窟 발굴은 여러 모로 의미를 지닌다. 


우선 이 발굴은 학교 자체 예산을 투입한 순수학술발굴이다. 나아가 그 조사는 철저히 방학기간을 이용한다. 따라서 이 발굴은 대학과 현장을 접목한 고고학 실습 교육장이기도 하다는 의미도 있는 셈이다. 


공주 석장리구석기 유적 발굴 이래 한반도 선사유적, 특히 동굴유적 발굴에 독보적인 업적을 쌓은 연세대박물관이 그 후속 작업 일환으로 매둔동굴을 발굴 중이다. 이번에 206년~2017년에 걸친 발굴조사 성과를 정리한 공식보고서 《정선 매둔 동굴유적(1) - 2016!2017년 발굴》을 펴냈다. 이후 전개된 발굴에서 괄목할 만한 성과가 있었거니와, 그것은 추후 보고서가 다룰 것이다. 


매둔동굴 주변 위성지도



말이 많았다. 이 발굴보고서가 정리한 조사 의의를 본다. 보고서 맺음말 전체다 


정선 매둔 동굴은 지장천에 바로 인접하여 남향받이로 뚫려 있다. 동굴 앞으로는 지장천 물줄기의 영향을 받아가며 이곳저곳에 형성된 자갈밭이 제법 넓은 범위로 분포한다. 또한 강 건너 편의 비교적 낮은 지대는 여러 종류의 짐승이 물가를 끼고 서식하는 데 알맞은 지리적 환경을 지녔으며, 동굴 입구는 그러한 경관을 두루 바라볼 수 있는 지점에 위치한다. 그리고 사철 메마르지 않고 흐르는 지장천의 줄기는 민물에서 얻을 수 있는 수산 자원을 먹거리로 확보하는 데 적지 않게 이바지하였다고 추정된다.




동굴 내부의 광장 부분에 해당하는 공간은 비교적 큰 규모에 속한다고 볼 수 있다. 이와 더불어 공간 내부에는 천정 등의 바위틈 사이에서 떨어지는 빗물의 영향이 매우 적은 것으로 나타난다. 동굴 주변의 지리적 조건과 동굴 내부의 환경 여건을 감안할 때, 매둔 동굴은 선사인들이 여러 시기에 걸쳐 그들의 삶을 영위하는 데 적합한 입지 조건을 잘 갖추었던 것으로 보인다.


매둔 동굴유적은 연세대학교 박물관의 자체적인 학술 조사의 일환으로 2016-17년에 걸쳐 세 차례 발굴되었다. 이를 통하여 매둔 동굴유적에는 구석기시대, 신석기시대, 청동기시대에 해당하는 선사시대의 문화층이 존재하는 것으로 밝혀졌다. 특히 정선 일대에서 구식기 유적의 모습이 구체적으로 드러난 사례는 매둔 동굴유적의 경우가 처음이라 생각된다.




그동안 아우라지 유적에서 이루어진 빌굴 성과는 정신 지역에서 전개된 신석기시대와 청동기시대의 선사문화를 이해하는 데 필요한 자료로 활용될 수 있다. 여기에 더하여 매든 동굴유적에서 얻은 고고학적 증거는 정선 일대에서 전개된 선사시대의 생활상을 좀 더 폭넓은 시각에서 통합적으로 재구성하는 데 크게 이바지한다고 말할 수 있다.


조사된 면적이 좁은 편이고, 출토 유물의 수량도 적지만 유기 구석기시대에 해당하는 인공 유물 가운데 주목되는 석제품은 밀개라고 생각된다. 이 석기의 형태적, 기술적 속성은 당시 규석기인이 돌날 제작 기술을 소유했음을 알려준다. 또한 쓴자국 분석 결과는 이 식기의 기능적인 특성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된다.




신석기시대의 문화층(6층 5층)에서는 신석기시대의 시기(기원전 20~17세기)에 해당하는 생활 용기(빗살무늬토기). 수확용 도구(돌칼), 도구 제작(돌망치 숫돌), 목공 (자위), 사냥(화살촉), 의복(뼈바늘), 물고기잡이(그물추, 일자형 낚싯바늘) 및 치레거리 조가비 말씨) 등이 출토되었다. 이와 같은 인공 유물은 매둔 동굴 또는 그 주변 일대에서 펼쳐졌던 당시 신석기인의 생활 모습을 여러 측면에서 복원하는 데 필요한 기초자료가 될 것이다. 또한 인공 유물과 각종 자연 유물(짐승배 물고기 뼈, 조가비루, 나무 숯 등)의 상호관계는 생계 자원의 확보를 위한 당시 신석기인의 물질적 수단과 그에 수반되는 가용 자원 활용 영역의 생태계를 구체적으로 추론하는 데 유용한 정보를 제공해준다.




한편 6층의 다진재층은 우리나라에서 처음 알려진 신석기시대의 유구로서 독특한 성격을 보여준다. 특히 불과 재의 보편적인 의미가 정화(淨化) 및 잡귀 구축의 속성을 지닌다는 민속학적인 관점에서 접근할 때, 6층의 존재는 당시 신석기인의 삶 속에 깃들어 있는 신앙 세계의 또 다른 모습을 엿보는 데 도움이 될 것으로 생각된다.




청동기시대 문화층(기원전 12~8세기)은 두 가지 점에서 주목의 대상이 된다. 첫째는 이 문화층을 구성하고 있는 재층이 당시 청동기인의 의도적인 행위의 결과로서 형성되었다는 점이다. 둘째는 그와 같은 의도적인 행위는 일련의 장송 의례 절차와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그러한 고고학적 자료가 내포하는 있는 성격은 매둔 동굴유적을 중심으로 이루어졌던 청동기시대 전기의 물질문화를 다양한 시각에서 접근하여 해석하는 데 유익한 논의의 대상이 될 것으로 판단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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