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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탐라국 왕궁은 어디에?
탐라가 정치체로 왕국을 형성한 시점은 분명 백제 동성왕 이전이다.
그때도 왕이 있었고 백제서 봉작을 받아갔고 백제가 망하자 신라에 대해서도 그리했다.
탐라가 정치 독자성을 상실한 시점은 고려 문종 때다. 이때 구당사가 본토에서 파견됨으로써 총독정치가 개막했다.
그래도 삼별초 때까지는 왕국이었다.
그 중심 곧 왕궁은 어디였는가?
2. 저 기간 정치체는 단일대오였는가?
난 복수라고 본다.
대표성을 주장하는 정치체가 적어도 둘 이상 존재했다고 본다.
한라산 기점을 북쪽과 남쪽은 분명 따로 놀았고 이 북쪽도 하나가 아닌 듯하다.
제주는 제주밖에서 보면 작지만 그 관점에 따라 거대한 공화체 집합이고 또 그 내부에서 봐도 무진장 큰 섬이다.
결코 단일대오로 봐서는 안된다.
제주가 단일대오를 형성한 시점은 놀랍게도 4.3 이후다.
고작 단일체로서의 제주 역사는 반세기 남짓하다.
저 4.3은 제주가 하나라는 정체성을 형성하는 결정타였다.
저 4.3 의식이 소멸하는 시점이 제주가 분열하는 시점이다.
제주는 단일할 수도 없고 단일해서도 안 된다.
제주의 힘은 다양성 포용성에서 나오지 획일성은 곧 죽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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