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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미라 연구는 필자 혼자 한 것이 아니라
그동안 많은 분이 도와주신 덕이다.
아래 사진은 2007년 어느날,
아직까지 조선시대 미라가 도대체 무엇인지 갈피를 못잡던 시절,
해외 전문 연구자와 함께 현장에서 의견을 나누던 사진이다.
이 당시 박준범 원장께서 현장에서 크게 도와주셨다.
기록 삼아 사진을 남겨 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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