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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 여기 쓴 것 같지만,
찐밥의 시대에 조, 기장, 수수가 각광받을 수밖에 없는 이유는
곡물의 낱알 크기가 매우 적기 때문이다.
크기가 작기 때문에 밥을 쪄서도 충분히 익는다.
오히려 지금 방식으로 끓여서 밥을 짓게 되면 너무 익을 수도 있다.
조나 수수를 밥에 섞어 지을 때 거의 문드러진 모양으로 나오는 것은 이 때문이다.
찐밥이라는 것은 조, 기장, 수수를 위해 특화한 방식의 밥짓기라는 말이다.
필자는 이 찐밥 짓기가 잡곡문명권에서 완성되어 한반도 남부에서도 쌀밥도 이를 이용하여
밥을 짓기 시작했으리라 보는데,
아마 쌀을 쪄서 밥을 짓던 시기에는 별로 맛있다는 생각을 하지 않았을 것이다.
한반도 쌀밥문명권에서 잡곡문명권을 이탈하여
진정한 쌀밥맛을 볼 수 있게 된 것은
필자가 보기엔 전술한 대로 무쇠솥이 나오면서부터다.
밥을 찐 시루가 나온다?
일차적을 그 시루는 잡곡밥을 위해 발명되었고 쓰이다가
한반도 남부에서는 쌀밥까지 짓기 시작했으리라 본다.
시루는,
잡곡밥을 위해 나온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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