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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인 광교산 서봉사지 발굴현장이다.
2013. 8. 26 이니 7년 전이라 당시 한백문화재연구원에서 막 발굴에 들어간 시점 아니었나 한다.
발굴전부터 현장엔 탑 부재가 늘려있었다.
탑은 복원해야 하나 문젠 본래 자리를 찾지 못해 골이 아프다.
저 자리에 그대로 세운데도 영 엉뚱한 자리라 고민이 많단 후문이 있다.
이런 식으로 부재가 널부러진 상태였다.
누군가 원반던지기를 했는지도 모른다.
통일신라 말기가 되면서 불교는 산문이라 할 만한 시대로 진입하는데 이 산문은 조선시대 이래 현대 한국사회에 익숙한 집성촌과 아주 흡사해서
강력한 종족집단을 형성하니
특정한 오야붕을 시조로 삼는 강고한 봉건제 시스템을 구축하게 되는데 그리하여 목 좋은 사찰들은 각자 나와바리가 있고 이 나와바리를 산문이라 하며
이 산문은 시조를 구비하게 되는데 이 서봉사는 그런 주요 거점 중 하나라
이곳은 현오국사라는 오야붕 나와바리였다.
그는 활동근거지가 개경이었던 듯 한데 그가 배출한 일파는 서봉사를 장악하고는 영향력을 발휘한 듯 싶다.
그가 개경에서 죽고 그의 사리를 이곳으로 봉안하고 그의 탑비와 부도를 이에다가 세운 이유가 있을 것이다.
현오국사비가 현장에 있다.
나는 이 서봉사를 무척이나 좋아해서
기분 좋을 땐 좋아서
마누라한테 얻어터질 땐 억울해서
이곳을 찾곤한다.
특히 단풍 한창인 가을날 예서 궁댕이 깔고는 바라보는 앞산 낙엽송 단풍은 절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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