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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동훈의 사람, 질병, 그리고 역사

주나라 왕실 시호를 딴 발해왕

by 초야잠필 2023. 11.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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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해왕의 시호는 주나라 시호를 많이 땄다. 

무왕, 문왕, 성왕, 강왕 등이 특히 그런데 이 네 왕은 서주 왕의 시호이기도 하며 순서도 거의 비슷하다 (문-무가 뒤집혀 있기는 하지만). 

시조 대조영은 주나라의 고공단보쯤 되는 셈이다. 

거처를 옮기니 백성들이 줄줄 따라 옮겼다는 것도 더 그렇다. 

문왕의 손자 성왕은 그 시호를 보면 태공 망이 있어야 할 텐데, 성왕이 죽고 아마도 숙부인 강왕이 즉위한 것을 보면, 발해 강왕은 역할은 태공 망이자 종법상으로는 성왕의 뒤를 이은 강왕을 자임했나 보다. 

조선 세조는 단종을 죽였기 때문에 태공 망 흉내는 내었어도 성왕-강왕과 같은 관계를 자임할 수 없었는데

강왕은 시호를 강왕이라 한 것을 보면 발해 성왕-강왕의 관계는 같은 조카 숙부의 계승이라도 좀 더 떳떳한 관계일 수 있겠다. 

성왕이 피치 못할 상황으로 병으로 죽어 강왕이 즉위하게 되었다거나-. 

발해 선왕의 시호 "선"은 세조나 중종처럼 중흥의 군주에게나 붙일 수 있는 시호이다. 

강왕 이후 선왕 때까지 정권이 안정되지 못한 것을 보면 내란이 있었을 수도 있고..

이후 대조영이 아니라 대조영의 아우 대야발의 후손으로 아예 왕통이 바뀐 것을 보면 

북송과 남송 정도의 단절이 이 시기에 있었을 수도 있다. 

아무튼 선왕은 그런 혼란을 종식한 군왕으로 보인다. 

선왕의 뒤를 이은 발해의 왕은 전해지는 시호가 없는데 개인적으로는 이전의 전통을 따라 주왕의 시호를 많이 따지 않았을까 생각해 본다. 

발해왕의 호를 보면 공덕에 따라 사후에 붙인 시호가 분명해 보이는데 재위시에는 무엇이라 불렀을지 모르겠다. 

발해왕의 왕호가 시호이자 묘호였을까? 

만약 그렇다면 발해로서는 당시의 최신 유행을 따른 셈이다.

묘호를 모든 왕에게 붙이기 시작한 건 중국도 당나라 때나 되어서 였기 때문이다.

동시기의 신라도 그렇게 하지는 않았는데, 발해의 정치체제가 당나라 유행을 많이 따라간 것을 보면 발해왕의 왕호는 시호이자 묘호일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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