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해 지도를 유심히 보면,
발해 땅에서 쌀이 많이 난 두 지역,
대동강유역과 함흥평야 일대가 방기된 것을 알 수 있다.
이 지역은 전통적으로 인구가 많던 지역으로
발해 땅 안에서 쌀이 난다면 이 두 지역밖에는 없기 때문이다.
이 지역보다 더 위로 올라간다면 당시 쌀 농사는 극히 어려워지는데,
발해에 대해 남은 기록을 보면 두만강 유역에서 쌀이 났다는 이야기가 있으니 전혀 불가능하지는 않았겠지만,
역시 대동강유역과 함흥평야 일대가 고조선 이래 줄곧 쌀이 나던 지역이라는 점은 변함 없을 것 같다.
발해의 5경은 이 두 지역을 빼고 설치되어 있는데,
고려 초기 기록에 서경이 완전히 버려져 폐허가 되었다는 것을 보면,
함흥평야 역시 마찬가지였을 가능성이 높겠다.
따라서 위 지도를 보면 대동강유역과 함흥평야 일대는 발해의 판도처럼 표시되어 있지만,
실제로는 신라와 발해간 완충지대로 사실상 완전히 버려진 지역이었음을 짐작할수 있다.
그러고 보면 발해는 쌀이 거의 안 났을 것이다.
두만강유역에서 쌀이 나서 유명했다는 이야기가 있지만,
하도 쌀이 없는 동네에서 쌀이 났다니 그것이 채록된 것이 아닐까.
발해는 한민족 잡곡문명의 마지막 왕조였던 셈이고,
이후 잡곡문명은 한국사에서 완전히 사라지게 되었던 것 같다.
P.S.) 잡곡문명은 도작문명에 비해 토지의 생산성은 떨어졌던 것이 사실 같지만 (인구를 보면 알수 있다) 그렇다고 해서 이 문명이 도작문명보다 초보적 농경문명이라는 시각에는 동의할수 없다.
서양문명의 바탕이 된 밀농사도 잡곡이라면 잡곡이다.
잡곡문명은 그 자체 완결성을 가지고 있는 문명으로 봐야지, 도작문명의 하위에 둘 수는 없다는 생각이다.
#발해 #발해남방 #발해대동강 #발해함흥평야 #발해의남진 #발해신라국경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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