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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송은의 뮤지엄톡톡

[줄줄이 유물 이야기] 디딜방아를 찌어라!

by 여송은 2020. 6.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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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실을 한 바퀴 돌다가...

 

 

온양민속박물관 2전시실 디딜방아

 


오잉? 디딜방에에 저렇게 묵서墨書가 되어 있었나?

뭐라고 써있는 거야?

 

 

庚申年庚申月庚申日庚申時姜太公下馬處
경신년경신월경신일경신시강태공하마처
帝王大
제왕대
四五乙卯陰三月卄六日(?)
사십오을묘음삼월이십육일(?)
1945년(을묘년) 음력 3월 26일 (?)

 

 
경신년 경신월 경신일 경신시, 라는 사주도 있는 건가? 뒤에 강태공 하마처라고 한걸 보면 강태공의 사주인가?

만능맨 고문님께 여쭤봐야겠다.

 

 


전화거는 중...

고문님! 우리 2전시실에 있는 디딜방아에 묵서 있잖아요, 경신년 경신월 경신일 경신시 라고 막 써있는데, 도대체 무슨 뜻이에요? 주문같기도 하고요.

허허허.
그건 일종의 부적과 같은 의미로 보면 된단다. ‘庚申’에는 여러가지 뜻이 담겨있는데, ‘강태공의 도술과 후천개벽문의 열쇠가 되는 뜻’도 담겨있지. 뭐 여기까지는 알 필요 없고!


상징적인 의미로 사용되어 안 좋은 기운을 쫓거나, 들어오지 않도록 막기 위해 ‘庚申年 庚申月庚申日 庚申時 下馬申 또는 下馬處(하마처)’ 라고 썼단다.

 

 

볼씨(디딜방아나 물레방아의 쌀개를 받치기 위하여 기둥처럼 박아 놓은 나무나 돌)와 쌀개(디딜방아 허리에 가로 얹어서 방아를 걸 수 있게 만든 나무 막대기)

 

 
아~~! 그렇군요. 곡식을 찧는 곳은 직접 먹고사는 문제와 직결되는 중요한 곳이고, 신성시(?)해야 하는 곳이기에 저렇게 디딜방아에 묵서해 두었군요!

그럼그럼. 그 당시 사람들에게는 매우 중요한 공간이었겠지. 그리고 방아찧으면서 사고가 많이 일어났거든, 실수로 다치거 하는. 그런걸 방지하기 위한 의미도 있었지.

 

디딜방아의 핵심인 공이(찧을 때 사용하는 길죽한 막대기)와 확돌(찧을 곡식을 담아 두는 곳) 흔히 공이와 확돌을 남자 성기와 여자 성기를 상징하는 의미로 사용하였다. 실제 공이에 달려 있는 방아촉들을 보면 남자 성기의 모양을 많이 닮아있다.

 

고문님 저렇게 큰 디딜방아는 마을에서 공동으로 사용했겠죠?

그럼그럼, 보는 것처럼 디딜방아는 크기도 상당해서 집집마다 두고 쓰기에는 어려웠단다. 부자인 집이나, 마을 한 곳에 두고 마을 사람들이 공용으로 많이 사용했지. 공동으로 사용하다 나무가 삭거나 부러지만 그때 다시 교체하고 그렇게 수리하며 마을 대대로 이어져 왔단다. 일제 강점기 넘어까지 사용했지.

 

 


네ㅎㅎ 경직도耕織圖 같은 그림에 보면 마을 아낙들, 남자들 모여 디딜방아 찧는 모습이 그려져 있어요.

큰 디딜방아를 찧을 때는 아낙들은 힘에 부쳤을 게다. 힘을 모아 하거나, 남자들이 주로 하였지. 아무튼 예전에는 먹는 것이 가장 중요하는 일이기에 이와 관련된 디딜방아를 그만큼 아끼고 귀하게 여겼단다.

네! 놀랐어요. 부적 같은 의미의 庚申年庚申月庚申日庚申時姜太公下馬處 라는 문구가지 써 놓은 걸 보면요. 아!!고문님, 수장고 앞에 이 문구를 당장 써놔야깄어요!! 나쁜 기운들 들어오지 못하게요!!

허허허 예끼 이놈.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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