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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송은의 온양민속박물관 이야기

줄줄이 유물 이야기-노란색 나라 유물들

유물들 사이에선 자신들이 갖고 있는 색에 대해 자부심이 굉장히 강했다.

 

같은 색을 지닌 유물들끼리 모이고, 뭉치다보니 어느새 거대한 나라가 형성되었는데, 이를 오방색국 시대라 하였다.

 

'오방색국'은 '다섯 가지 색깔의 나라'라는 의미인데, 여기에는 파란색 나라, 빨간색 나라, 검은색 나라, 흰색나라, 마지막으로

 

노란색 나라가 있었다.

 

노란색 나라는  중앙에 위치해 있었으며 땅이 비옥하하니 늘 먹을것이 풍족하였다. 또한 노란색을 보고 있으면 곡식이 누렇게 익어가는 들판, 눈부신 황금이 연상되어 존귀한색, 부의 색으로 여겨져 다른 나라로부터 칭송을 받았다.

 

 

그런데, 그렇게 태평성대를 누리던 노란색 나라에도 조금씩 조금씩 분열의 조짐이 보이기 시작했는데....

 

 

 

 

겉으로 보기에는 평화로워 보이는 노란색 나라...

 

 

 

 

갑자기 노란색 나라 단체 카톡방이 불이 나기 시작하는데...!! 

 

카톡카톡 

 

 

 

거북흉배

붉은 화염을 내뿜는 거북을 금은실로 촘촘하게 수놓은 흉배이다. 흉배는 흉배는 조선시대 왕, 왕세자, 문무백관이 입던 관복의 가슴과 등에 장식한 표장으로, 거북 문양 흉배는 흥선대원군 이하응李昰應 (1820–1898)이 사용했던 것으로 추정한다.

 

 

국력을 키우겠다고 최근에 대거 이주 유물을 받아들였지요.  

정통 노란색이 아닌데, 노랑 비스무리한 유물들까지 폭넓게 받아주게 되었고, 그러다보니 이 신규 세력들과 기존 세력들 간에 크고 작은 문제들이 발생한다고 들었는데, 사실인가요?

 

 

 

 

 

 

 

 

  갈모

비가 올 때 우산 대신 갓 위에 덮어 썼던 모자이다. 한지 위에 콩기름이나 들기름을 여러 번 발라 비에  젖지 않도록 마감하였다. 주름 하나하나에 대오리로 살을 붙여 펼치면 고깔 모양이 되고, 접으면 부채처럼 접혀 휴대하기 편리하다.

 

 

사실이갈!

기존에 있던 토착 노란색 유물들이 을매나 우리를 업신여기던지, 뭐 서러워 살수가 있갈! 뭐 우리가 오고싶어서 왔갈? 우리도 처음에 안간다고 했갈! 그런데, 하도 누리끼리하네 하며 최강 노란색 나라에서 같이 살아보자, 잘해준다 하니 왔갈! 그렇게 차별할거면 그냥 나라없이 사는게 낫갈!!

 

 

 

 

 

 

 

석조보살좌상
착의着衣는 양어깨를 모두 덮어 내린 통견의通肩衣며, 선정인禪定印의 수인을 취하고 반가부좌한 형태이다. 양쪽 눈썹 사이의 백호白毫는 보석을 끼워 넣었을 것으로 추정되나 현재는 남아있지 않다.

 

 

맞습니다~~갈모님. 얼마나 서러우셨겠어요. 그 마음 다 압니다. 지금 올라오는 미움, 분노 모두 부질 없는 마음들입니다.

자~~~ 그 감정들을 툭 가라앉히고, 그만 노여움을 푸소서.

 

 

 

 

뒤웅박

박을 쪼개지 않고, 꼭지 근처에 주먹만 한 크기로 도려내고 속을 파내어 만든 용기이다. 꼭지 부분을 따내어 가죽경첩으로 여닫을 수 있게 만들었다. 처마 밑이나 방문 밖에 매달아 두고 씨앗이나 간단한 일상용품 등을 보관하였다.

 

 

참나~~~ 온 몸을 노~~~란 황금으로 뒤집어쓴 유물이 '다 이해합니당~~ 노여움을 푸소서~~' 하면 우리가 아주 퍽이나 '네~ 알겠습니다.' 하겠수?? 이건 뭐 정치에 대한 센스가 부족한거야, 아니면 공감능력이 부족한거야 뭐야. 

내가 여기 나라 들어올 때, 분명히 들었어. "아! 뒤웅박님 정도면 진짜 누런거에요! 저기 누루딩딩한 애들이 얼마나 많은데요! 자신감을 갖고, 노란색 나라로 들어오세요!" 라고 했는데.... 가만! 그럼 '노란색'의 기준은 뭐야? 어디까지가 노란색이야?

 

 

 

 

 

 

 놋반상기

격식을 갖춘 밥상을 차릴 수 있게 만든 한 벌의 그릇으로 모양과 무늬가 같고, 대접 외에는 뚜껑을 갖추고 있다. 조선후기의 실학자 유득공은 그의 저서 《경도잡지京都雜誌》를 통해 ‘유기그릇을 중요시하는 사람들은 밥, 국, 나물, 고기까지 일체의 식기로 유기그릇을 사용한다. 심지어는 요강, 세숫대야까지도 유기제품이다.’ 라고 기록하다. 이로 미루어 보아 조선후기 실생활 용구로 유기제품이 널리 사용되었음을 알 수 있다.

 

 

저기요? 저희 가족을 보시면 참고가 될 것 같네요? 호호호

 

 

 

 

풍잠

노란빛을 띠는 반달 모양의 작은 장신구이다. 남자들이 갓을 쓸 때 갓이 아래로 내려와 눈을 가리는 것을 막기 위해 망건의 앞이마에 풍잠을 부착했다.

 

 

 질보다 양이야 뭐야? ;;

작지만 영롱한 노란빛을 지닌 제가 노란색 기준 아닐까요? 거북이등겁데기(대모)로 만들어 얼룩덜룩하지만 이마저 패션으로 승화해 버리죠. 훗.

 

 

 

 

 

 

 

탕건집

대나무살을 가늘게 다듬어 원통 모양의 틀을 만들고 잔무늬가 새겨진 종이를 바른 탕건집이다. 남성들의 머리쓰개인 탕건은 쉽게 구겨질 수 있으므로 탕건집 안에 넣어 보관하였다.


 

 

저는 풍잠씨 말에 동의하지 않아요. 지금 이 상황에 기준이라는 것이 유효 할까요? 그럼 기준에 미치지 못하는 유물들은 다 내치실건가요? 아니잖아요....ㅠㅠ

그리고 그 기준은 누굴 기준으로 하느냐에 따라 달라지잖아요. 만약, 제가 노란색 기준이면요?? 우리 같이 갈 수 있는 방안을 생각해 봐요. 채독 어르신, 어르신이 말씀좀 해주셔요.

 

 

 

 

 

 

채독

싸릿개비나 버들가지를 독이나 항아리처럼 엮은 것이다. 옹기가 귀한 산간지방에서 많이 쓰다. 안쪽에 틈을 메우기 위해 쇠똥을 바르고 진흙을 덧바르거나 보릿겨와 진흙을 섞어 바르기도 하다. 채독은 주로 콩, 감자, 고구마와 같은 마른 곡식을 보관하였다.

 

 

뭐, 제가 할 말이 있겠냐만은... 우리가, 여기 노란색 나라에 모여있는 유물들이 컬러칩에 있는 노란색 번호처럼 번호 매겨 여기서부터 여기까지는 노란색, 그 다음은 아닌거. 이렇게 칼같이 딱딱 구분할 수 없잖아유.

 

 노란색 나라에 들어올 때, 노란거, 누런거, 누리끼리한거, 노리끼리한거, 누루딩딩힌거, 노로스름한거, 누루스름한거, 색노란거 등등 봤을 때 크게 노란거에 벗어나지 않으면  웬만하면 다 포용해준거잖아유. 그런데 여기서 우리가 '내가 더 노랗네, 네가 덜 노랗네.' 이게 의미가 있을까 싶어유. 서로 존중하고, 배려하고 각자 마음속에 '멋진 노란색' 하나씩 품고 살면 되지 않을까유.... 뭐 문제 있을까유?..

 

 

 

 

거북흉배

 

채독 어르신 말씀이 맞아요. 구렁이 담 넘어가듯 어울렁 더울렁 넘어간 감이 없잖아 있지만, 틀린 말이 아니에요. 조직이 커지면 그 안 구성원간에 크고 작은 문제가 있기 마련이죠. 하물며 우리는 나라 잖아요. 좀 더 '잘'살아보자고 한 배를 탄 사람들인데, 편가르기 하는 건 배 쪼개서 각자 가자는 거겠지요. 한 발 양보하고, 한 발 끌어주고 그렇게 지내봅시다. 여러분!!

 

 

 

 

 

 

갈모

 

좋은 말씀이갈!! 나도 노여움 풀고, 적대심 풀고 다가가겠갈!!

그런의미에서 우리 고향 사람들도 이 노란 나라에 오고싶어하는데, 오라고 해도 괜찮갈? 꽤 노란축에 속하는 친구들이갈!

 

 

 

 

거북흉배

네, 뭐 그렇다면 오시라고 해야죠? 같이 잘 지내 봅시다. 그런데 누구....?

 

 

 

 

 

 

줄줄이 짚신친구들이갈!

 

 

 

 

 

 

 

 

짚신도 노란색 인정?  ㅎㅎ

 

노란색 나라 유물들은 그렇게 서로서로 배려하며 즐겁게 살았다고 합니다.

어울렁 더울렁.

 

 

 

* 위 이야기는 노란색 유물 촬영을 하면서 '노란색'을 어디까지 봐야할지 직원들과 고민했던 에피소드를 바탕으로 구성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