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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당당탕 서현이의 문화유산 답사기

지역 발전 모멘텀으로서의 Heritage와 처인성

by 서현99 2022. 5.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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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월 29일 열린 <용인 처인성의 역사적 가치와 활용> 학술대회 자료집에 실린 김태식 연합뉴스 K컬처기획단장님의 기조강연 글입니다.

 

지역 발전 모멘텀으로서의 Heritage 처인성

 

김태식(연합뉴스 K컬처기획단장)

 

 

나는 수학여행 가서 교복 차림으로 모자 삐딱하게 걸치고는 첨성대 기어올라 기념사진을 남기지 못한 불행한 세대다. 가지 않은 길은 언제나 아름답기에 그런 사진 남긴 이들이 로서는 그렇게 부러울 수가 없다.

같은 경상도 권역을 산다 해서 그랬겠지만중학교 시절에 목포를 중간기착지로 삼는 호남과 남해안을 둘러보는 코스를 학교에서 선택해 주었, 고교시절이 되어서는 설악산을 수학여행지로 학교가 강제 할당하고는 가뜩이나 산을 타는 일이라면 이골이 날더러 울산바위를 찍고 오게 했기에, 그런 내가 첨성대를 오를 일도 없었, 석가탑 다보탑도 등반할 기회가 원천봉쇄됐다.

같은 불행한 사람들을 제외한 세대 혹은 그보다 앞선 세대로 중고교 학창시절을 사람들한테 경주는 수학여행 단골 코스였다. 묶는 순례 코스가 패키지였던 사람이 한둘이랴?

그에서 첨성대를 돌고 불국사랑 석굴암을 그네들이 남긴 흔적들은 졸업앨범 뒤켠을 장식하곤 하니, 이제는 희미하게 색이 바랜 그런 흑백사진들을 보면서 매양 나도 첨성대 봤으며 하는 꿈을 꾼다. 지금 보아도 그것이 어찌해서 가능했는지 참말로 알쏭달쏭하거니와마천루 즐비한 요즘이야 아무것도 아닌 높이가 되겠지만, 높이 9m 이르는 벽을 어째서 다들 그렇게 타고 올랐는지, 정상 아래턱까지 다닥다닥 붙어 올라서 기념 촬영한 수학여행 사진이 나로서는 그토록 부러울 없다. 첨성대가 단을 쌓아 어올린 석축이라계단식이라 더욱 그렇게 보이기는 하겠지만어떻게 그렇게 첨성대 정상밑에까지 학생들이 기어올랐는지 때마다 기이함을 자아낸다. 모습을 보며 나도 말순 종말이랑 첨성대 올라 교복 입고 사진 찍어봤더라면 좋았겠다 하는 부러움이 멀스멀 기어오른다.

여담이나 첨성대를 올라보고자 하는 욕망을 또한 마침내 풀고야 말았으니, 2016 912경주 남남서쪽 8km에서 발생한 규모5.8 지진이 준 선물이었.

경주 첨성대(출처:문화재청)

사건을 기억하 사람들한테 각인한 장면 하나가 지진이 발생한 순간에 비보이 댄서의 동작처럼 심하게 요동치는 첨성대 감시카메라였으니, 알고 보면 첨성대가 그렇게 흔들렸다기보다는  감시카메라가 그렇게 몸을 틀어댔던 것이니, 그럼에도 장면은 우리한테는 그리 익숙 아니하는 지진과 같은 자연재앙이 문화재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는 보여준 흥미로운 례라 하겠다.

아무튼 지진이 첨성대 역시 크고 작은 변화를 초래했으니,

이전보다 엇이 뒤틀렸다 해서 당국에서는 보수공사에 착수했으니, 과정에서 꼭대기에 이르는 사다리를 설치한 가설 비계가 들어섰으니, 그것을 이용해 나는 하이바를 뒤집어쓰고는 천삼백 석축 기념물 정상을 마침내 등정하게 되었.

아래서 보면 고만고만하게 보이는 9m가 얼마나 아찔한 높이인지는 정상에 사람만이 안다. 비슷한 경험을 나는 불국사에서 했으니 석가탑과 마주하는 높이 10m 다보탑을 전면 해체 수리할 무렵에 역시 정상을 올라 아래를 조망했더니 10m 그리 무서운 높이인 줄을 그때 비로소 알았다.

그건 아파트  높이에서 조망하는 느낌과는 확연히 달랐다.

석가탑을 올랐을 적에도 그렇고첨성대 정상에서도 그러했으며덧붙여 고신라시대 거대 고분이 밀집한 경주 대릉원 구역 중에서도 벚꽃 만발한 어느 봄날 어느 새벽 몰래 올라  아래로 펼쳐진 장대한 벚꽃 밭을 조망할 때도 그랬으니,

그것만이그런 자리와 그런 즌만이 선물하는 장대장엄을 우리는 팔아먹지 못할까 나는 안타깝기 짝이 없었. 만큼 그에서 조망하는 경주는 땅바닥에 붙이며 높아봐야 2m 되지 않는 땅강아지들이 경험하는 그것과 사뭇 달랐다그랬기에 이런 상념에 젖기도 했으니 나중에 어떤 기회가 내게 주어져 내가 그것을 결단할 위치에 서게 된다면,  나는 첨성대 꼭대기를 팔아먹고, 석가 다보탑 꼭대기를 장사하며, 선물하리라고 말이다.

벚꽃 만발한 시즌에는 미추왕릉 꼭대기를 국민 시민에 첨성대 얘기가 나온 김에 하나 덧보태어 시대로 돌아가면 그런 데가 어디 첨성대 나뿐이랴?

불국사 청운교 백운교에서도 그랬고석가탑 다보탑에서도 사람들이 그랬다. 그렇 올라타고, 그렇게 댕글댕글 매달려 돌덩이에 등을 비비고 운동화로 밟아가며 기념사진 찍고는 다들 그것으로 추억을 아로새기고자 했으며, 훗날 그것을 보면서 그땐 이랬노라고 파안대소하곤 한다. 그렇다고 그때의 사람들이 문화재를 지금보다 사랑했다고 장담할  있겠는가?

용인 처인성의 역사적 가치와 활용 앞세운 오늘 자리서 나는 저를 고리 삼아 Heritage 무엇이어야 하며그런 관점에서 우리의 주인공 처인성은 어떠해야 는지를 점검하는 작은 기회 하나를 삼고자 한다.

얼마 문화재 업계 일이라 해야 할지 경계선이 모호한 지점에서 아주 이상한 사건 하나 발생했다.

임기 완료 직전인 대통령 문재인이 집권 기간 내내 청와대 인근특히 북쪽 북악산 일대 개방에 열을 올렸으니, 일환으로 여전히 금단으로 남은 지점을 추가 개방키 하고 그것을 기념할 요량으로 취재진과 더불어 구간 일대를 돌아보다 과정에서 와대가 배포한 사진 장이 문제가 되었거니와, 법흥사라는 절이 있던 터에서 그가 부인과 더불어 나란히 복원 공사에 요량으로 갖다 놓은 화강암 주춧돌에 앉아서 참가자들과 소하는 장면이 있었으니 이를 불교계가 느닷없이 불교 폄훼로 정치쟁점화한 것이다.

식을 접하고는 나는 폭소를 금할 없었으니, 주춧돌에 칠순 노인네가 쉰다고 엉덩이 걸친 일이 어찌하여 저리 해석될 있는지 참으로 알다가도 모를 노릇이었, 주초란 본래 둥을 걸치기 위한 반석이라,

앉으라고 마련한 자리니 그에 나무기둥은 앉아도 되고사람은 앉아서는 되란 법은 하늘에도 없고 땅에도 없다. 이건 그것이 문화재인가 아닌가와는 연관이 없으니설혹 그것이 복원용으로 현대에 제작한 주초가 아니요,

아득한 시절그러니깐 법흥사라는 사찰이 이곳에 들어설 무렵에 대웅전을 지을 요량으로 만든 것이라해서 그에 사람이 걸터앉아서는 아니 된다는 논리는 지구촌, 아니 우주 어디에도 없다.

이를 모를 없는 불교계, 특히 최대 계파인 조계종이 불교 폄훼를 운운하며 들고 어난 까닭은 저런 문제제기를 통해 노리는 무엇인가의 정치 메시지 때문이라고 보거니, 익히 알려졌듯이 문재인 정부는 문재인 부부 자신이 독실한 천주교인인 까닭에 그에 비롯하는 종교 편향 논란이 심심찮게 있었거니와, 그런 과정에서 터져 나온 누적한 불교 불만 이상도 이하도 아니라고 나는 본다. 나아가 그것은 이제는 끝난 마당인 문재 정부를 향한 메시지가 아니요, 출범을 코앞에 윤석열 차기 정부를 향한 메시지임에 틀림없다.

이를 통해 조계종이 무얼 노리는지는 차차 밝혀지겠지만 사태 전개를 두고는 몹시도 나는 거슬렸다는 말을 적기해 둔다 과정에서 주초는 물론이요 터가 문화재 운운하는 말들이 오갔으니저에다가 왜 문화재를 끌어들였는지 나는 이것이 몹시도 분통터진다. 주초가 설혹 문화재급 석재石材인들그에 사람이 걸터앉아서는 된다는 논리는 어디에 있으며더구나 그런 행위가 불교 비하한다는 논리는 어디 있단 말인가? 결국 저와 같은 사태 전개는 우리가  흔 문화재라고 하는 heritage 대한 상반하는 인식을 더욱 강화할 뿐이다.

문화재라 해서 먹고,

문화재라 해서 신주단지 받들 해야 하는가?

문화재가 이리 취급되어야 한단 말인가? 이는 처인성에 대한 우리의 물음이기도 하며 이는 처인성이 어떤 방향으로나아가야 하는지에 대한 답변을 구하는 과정이기도 하다고 나는 본다. 처인성을 무엇을 어찌해야 하는가?

우리가 흔히 문화재라고 말하는 heritage 어떠해야 하는가?

그것은 신주神主 아니라 완구玩具여야 한다고 나는 계속 강조한다. 이에서 처인성 역시 하나의 예외가 있을 수는 없다. 우리가 말하는 문화재는 모든 것이 그렇지는 않겠지만 대부분이 문화재로 태어난 것이 아니요 더구나 신주로 탄생한 것도 아니다. 함에도 고고학 발굴이라는 딱지를 붙이고 그것이 출현하는 순간 신주로 돌변해서는 만져도 되고 함부로 근접해선 된다는 금기禁忌 유령처럼 배회한다.

발굴만이 아니요각종 과정을 거쳐 문화재로 격상한 모든 재가 저리 통용한다.

금기란 무엇인가기피다기피란 무엇인가격리다.

그리하여 그것이 태어나던 공간에서 완물玩物이였 흙더미는 금덩어리로 돌변해 금지옥엽해야 하는 금덩이요 옥덩이로 변질하곤 한다. 그것이 설혹 문화재로 돌변했다 해서 그것이 신주일 수는 없다. 소중하단 말이 완구가 되지 말아야 하는 말과 동의어일 수는 없다. 그것 설혹 신주로 태어났건 말건 출현과 더불어 일약 국가의 보물로 격상해서는 신주로 접해야 한다는 논리, 이를 나는 흔히 문화재 신주단지주의라 명명하거니와 나는 지금 것을 괴물로 규정하며 저항한다. 완물 혹은 완구여야 한다는 말이 그것을 함부로 대하고 굴려도 된다는 말과 동의어일 수는 없다.

문화재 신주단지주의가 부른 비극 하나가 승례문 방화다.

숭례문 방화사건 당시

어느 얼빠진 노인네가 그 방화범으로 붙잡히고 나서 말이 언제나 뇌리에 남는다. 이미 창덕궁 방화 전력이 있는 것으로 드러난 노인네는 숭례문 질렀냐 물으니 사람들이 소중히 여기기 때문이라 했다.

방화를 부른 것은 방비가 허술했기 때문이 아니다화재경보기가 설치되지 않았기 문이 아니요 경비인력이 배치되지 않았기 때문이 아니다. 접근해서는  된다는  금기와  기피가 부른 참극이다.

한류 관련 콘텐츠를 생산 가공하는 연합뉴스 K컬처기획단장으로서 나는 가지 꿈이 . 개중 하나가 석굴암과 해인사 경판전을 K-pop 공연 무대로 활용하는 것이다기왕이면 방탄소년단이나 블랙핑크 정도는 불러다가 이곳에서 공연을 하게 하고 싶고, 그것이 의치 않다면 적어도 이를 무대로 삼는 뮤직비디오 하나만큼은 제작하는 일에 다리를 놓고 싶다. 1960년대 말인가그때 이미자의 섬마을 선생님’ 뮤직 비디오를 보니촬영장이 경회루였다.

지금이라고 경회루 연못에서 뮤직비디오를 촬영하지 못할 것도 없겠지만, 절차가 매우 까다로워, 일전에 BTS가 공연무대를 펼칠 때도 각종 인허가 과정을 거쳤다고 기억한

문화재는 어떤 것도 일상에서 유리하거나 격리할 수는 없다. 만지고 부대껴야 한다. 로는 엉덩이를 붙이고는 쉼을 제공하는 공간이기도 하며, 때로는 지금을 추억으로 간직하고 하는 사람들한테는 그것을 추념할 기념촬영 공간이 되어야 하며 세계를 주름잡는 BTS나 블랙핑크가 마음대로 공연을 펼치는 공간이어야 한다. 팝스타 비욘세가 뮤직 비디오 촬영한다니 박물관 문을 닫아버리고 그를 위한 각종 편의를 제공한 루브르박물관의 담대함을 우리 못하는가? 뮤직비디오를 보면 각종 요란하고 성적 취향 농후한 댄스가 난무하거니, 우리 같으면 설혹 박물관 문을 열어주겠지만, 저와 같은 결과물을 두고 각종 왈가왈부가 난무할 것이라 생각하니 몹시도 씁쓸하다.

나는 처인성이라는 주제를 나한테 던진 자리에서 저들을 빌려 처인성 역시 지역사회와 부대끼며 같이 가야 함을 역설하고 싶다. 그것이 있어 자긍심을 느끼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 그것이 있어 산보하는 시민공원으로 삼는 사람이 있을 것이며, 마누라한테 실컷 얻어 터지고선 분풀이를 없는 남편들이 머리 식히는 곳이기도 해야 한다. 처인성에만국한하고 싶지는 않지만 다종다양한 사람들한테 다종다양한 용도로 끊임없이 처인성은 변주 되어야 한다.

 

용인 처인성 주변 정비 후(2021년)

용인 문화재 관련 일들에 서너 나는 얽히게 되었으니, 과정에서 언제인지 그런 자리 원고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나는 용인에 대해 새삼 놀란 대목 하나가 면적이었. 울과 인접한 수도권인 용인이 당시 난개발의 표본과도 같은 곳으로 인식되었지만, 지금 인구 백만을 넘어 특례시로 승격한 용인을 이곳저곳 많이 다닌 편이다. 난개발 난개발해 온통 아파트 천지인가 생각하기 십상이지만, 실제 내가 마주한 용인 혹은 용인들(Yongins) 그런 모습과 거리가 한참이나 멀어 실상 도농복합지역이라 하는 편이 나을 싶다. 개발이 진행되지 않은 데가 여전히 지천이다.

그럴까?

면적 대비 개발 면적 때문이었.

인구 백만이라 하면 대단하게 보이지만, 그것 천만 서울에 비하겠는가? 토지대장을 보면 인구 기준으로 십분지 일에 지나지 않은 용인은 면적이 서울의 98% 달한다.

구체 수치를 보니 서울이 전체 면적 605.2km²인데 주어 용인은 591.3km² 실상 차이가 없다.

간단히 말해 서울에서 명이 사는 곳을 인은 달랑 명이 거주하는 고장인 셈이다.

백만이 주는 압박감은 대단하나용인이 그렇게 집적한 고도 밀도 대도시 느낌을 상대적으로 주는 이유가 때문이라고 본다처인성은 그런 용인에서도 아직은 인구밀도가 낮은 남부 지역 남사읍 아곡리에 위치한다. 상권 혹은 거주권이라는 측면에서 용인보다는 외려 서쪽으로 인접한 화성 동탄신도시에 깝지 않은가 하는 느낌을 준다. 주변은 여전히 도시 풍모보다는 한적한 농촌에 가깝지만 특이한 대목도 있어 ‘e편한세상 용인 한숲시티(이하 한숲시티)’ 해서 대규모 아파트 신축단지가 북쪽 인접 지점에 들어서 있다는 점이 그것이다. 관련 자료를 찾아보니, 2015 10월에 대림산업이  지하 2, 지상 2967 , 6 블록전용면적 44103에 6725 규모로 분양을 시작한 신도시급 대단지 한다.

건설사 일방적 홍보라는 색채는 강하지만 천장이 일반 아파트보다 15높은 2.45(일부가구는 2.4) 개방감을 살리고 남향 위주로 단지를 배치해 채광과 환기도 원활하도록 문구가 눈에 띈다나아가 가구마다 대림산업이 자체 개발한 스마트홈’ 시스템을 입해 스마트폰이나 태블릿PC 가구 가스조명난방을 제어하고 에너지 사용량을 확인  있다고 한다. 무엇보다 층간소음을 줄이고자 거실과 주방 바닥에는 일반 아파트보다 2 두꺼운 60두께의 차음재를 사용하고 끊김 없는 단열설계 기술을 적용해 결로 발생 줄였다는 말도 있다.

축구장 15 크기에 이른다는 6 테마파크도 있고, 스포츠파크(Sports Park)’에다 라이브러리파크(Library Park)’, 포레스트파크(Forest Park)’, 에코파크(EcoPark)’까지 갖췄다는 선전문구도 보이는데 간단히 말해 자급자족형 신도시 개념을 도입했다 같다.

남사 한숲시티 분양 광고 조감도

당시 분양에 즈음한 언론도보를 보면 신도시가 특이한 점으로 행정구역상으로 용인시에 속하지만차량으로 10분대면 동탄2신도시로 이동할 있어 동탄 생활권역에 한다 대목을 꼽은 것을 보면 지향점이 용인 중심지가 아니라 동탄임을 엿본다. 그에 힘입어 남사면은 인구가 68 명에서 일약 2 명로 들어서 작년 2월 19일에는 남사읍으로 승격된 일도 있었.

용인시 사정을 아는 지인 전언에 의하면이곳이 아직 인프라는 부족한 편이지만 아파트에 살고 싶으면서 시골 감성을 좋아하는 이와 퇴직한 노인층, 그리고 서울로 출퇴근하는 젊은 사람이 많이 산다고 한다내가 비교적 장황하게 이 한숲시티’ 이야기를 하는 까닭은 지리적 인접성과 더불어 인성을 주로 산책 코스로 국한하기는 하지만 소비자 절대 다수가 거주민이라는 사실 때문이다. 이는 처인성이 향후 어떤 방향으로 발전하느냐 키를 공동체가 이곳을 삼은 전통적인 지역민과 더불어 한숲시티’ 거주민들이 쥐고 있다고 봐야 한다.

전통의 지역민과 외부에서 들어온 새로운 주민 사이의 간극을 좁히는 문제는 남았겠지만, 결국 처인성 살아남느냐 아니면 유적이라는 흔적만 남긴 터로 남느냐 하는 관건은 지역민 손에 달려 있을 수밖에 없다.

마침 구심점으로 오늘 자리를 마련하게 계기가 용인처인성역사교육관이 개관했으므로 전시관이 어떤 스탠스를 잡느냐도 관건이 된다. 용인시가 직접 운영하는 시관은 우선 서양식과 전통 한옥을 결합한 건축 형태가 주목을 요하지만, 그보다 중요한 것은 처인성을 고리로 삼아 어떻게 지역사회 공동체 형성에 문화를 접목할 것인가 하는 제가 대두한다.

용인 처인성역사교육관(사진제공:용인시청)

처인성은 역사적 관점에서 고려시대 몽고 침략기에 고려왕조로서는 중요한 승전보를 안긴 중요한 곳이지만, 순간 혹은 사건이 중요하다는 것과 그런 장소성 역사성을 지닌 그에 걸맞은 가치를 발하는가는 전연 별개의 문제다. 구슬이 서말이라도 꿰지 않으면 소용이 있겠는가? 우리가 전시관에서 기대하는 점이 바로 이것이다.

처인성 현황과 그것을 있게 처인성 전투, 그리고 다년간의 발굴성과로 드러난 처인성 면모 등등에 대해서는 자리에서 서는 다른 분들의 옥고가 있을 것이므로, 그것은 사계 전문가들 몫으로 넘기기로 하되넓은 충적 평야지대 해발 70.9m 솟은 자연구릉을 최대한 활용해 평면 사다리꼴에 가까운 형태로 둘레라고 봐야 우리는 어떻게 가공해서 어떻게 팔아먹을 것인가?

용인 처인성역사교육관(사진제공:용인시청)

351m 지나지 않은 처인성 문화재 근엄주의가 판치는 시대에, 더구나 그것이 문화재 보존과 곧잘 등치하는 대한민국에서 나는 처인성을 만들어 그것을 팔자고 주문한다. 무엇을 만들 것인지는 아직 나는 답이 없다.

그런 답이 다면 다른 데서 이미 팔아먹을 테니 말이다나라고 무슨 귀신이 곡할 만한 재주가 있을 없다. 다만 당위성만 역설하고자 따름이다다행히 토대가 전시관 개장과 더불어 물꼬는 텄으니 기대해도 좋지 않겠는가? 용인이라 언제까지 에버랜드로 장사해야 하며골프장으로 각인해야겠는가용인이라 해서 언제까 생거진천 사거용인 生居鎭川 死居龍仁이라 해서 진천에 밀려 용한 공동묘지로만 남아야하겠는가? 하긴 용인에 저명한 조선시대 사대부 무덤이 많은 것은 사실이나 그렇다고 그것 유별난 유산이라 수는 없는 노릇이니, 그것은 다른 무엇보다 조선왕조 도읍 한양과 가깝다는 지리 특성 이상도 이하도 아닐뿐더러, 측면에는 서울 인근 고장이  그래 비교우위도 없다.

인구 백만 특례시 용인에 빠진 것은 허영vanity이다.

그것을 채우는 것이 문화다.

하필 영인가 해서 말에 발끈하는 이도 있겠지만 나는 언제나 허영을 긍정하는 에너지로 석하려 한다.

그것은 욕구이며 분출이다공동체를 고급지게 하는 양념이 허영이다.

허영 문화로 채울 수밖에 없다. 문화라 해서 모름지기 서양 클래식 공연을 상설로 하는 화원이나 갤러리,

혹은 영화관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문화는 저력이다.

나는 언제나 용인을 보면서 용인이 언제쯤 허영의 시장 vanity fair 격상할까를 상상하곤 한다.

그로 통하는 도로 역시 여러 갈래겠지만백만이라는 인구와 서울에 맞먹는 , 그리고 여타 고장에 뒤지지 아니하는 장구한 문화자산과 자연자산을 지금보다는 훨씬  체계적이며 거시적으로 발굴하고 개발하며 활용하는 계획을 짜야 한다고 본다. 그렇다고  방식이 비교적 지금과 가까운 어느 광역자치단체에서 시장이 주도한 것처럼 도시 전체, 혹은 곳곳을 뒤엎은 박물관 도시로 만든다 해서 순식간에 용인이 문화도시가 된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문화는 저력이기에 그에는 끈기와 시간이 필요한 법이다.

처인성은 작지만 그것이 일으킬 평지풍파는 작지 않다고 본다.

이를 시발로 삼는 문화도시 용인이라는 허영이 모란꽃처럼 화려하게 피어올랐으면 한다.

 

가자 허영의 시장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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