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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4월 25일 나는 바가지 뒤집어 쓰고 아시바 사다리 타고는 첨성대 만데이로 올랐다.
마천루 시대 저 정도 높이가 무에 대수겠냐만 비단 마천루가 주변에 없다 해도 10미터가 얼마나 아찔한지는 올라본 사람만이 안다.
다보탑이던가? 그 역시 같은 신세일 적에 아시바 힘을 빌려 올라서는 사방을 조망한 적 있으니 비슷한 느낌이었다.
직전 경주를 지진이 엄습했다. 진도 6이 넘는 강진으로 기억하거니와 첨성대 역시 공연하는 걸그룹처럼 흔들렸으니
이럴 적마다, 아니 더 정확히는 이런 일만 터지기를 기다리는 문화재안전진단팀은 존재감을 각인하고자 아시바를 꺼내거니와
그런 소식을 접하고는 그래 이때 아니면 내 언제 첨성대 날망 올라 사해를 조망하며 그 속내를 헤집으리오 하는 심정으로 냅다 현장으로 달려 上山을 결행했더랬다.
마침내 생각도 못한 기회를 얻었으니
지진아 고맙다
해야 할까?
***
이럴 때마다 문화재는 뜯고 싶어 환장한다. 붕괴위험을 내세우며 이참에 쏵 전신마취하고는 대수술하지 못해 환장한다.
이 또한 뜯자 했다. 넘어지기 직전이니 뜯자했다.
과학을 언제나 무기로 내세우는 저들을 공박하기란 무척이나 버겁다.
저에 반대한 나는 이렇게 말했다.
무너지면 어떤가? 왜 무너짐을 용납하지 못하는가?
이런 생각이 나는 지금도 변함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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