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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 질병, 그리고 역사

호적에 차마 쓰지 못한 '양반' 한 글자

by 신동훈 識 2025. 10.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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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호적을 보면 

양반인지 중인인지 평민인지 노비인지

몇 가지 판단 지표를 보면 알 수 있다.

하지만 호적에다 양반, 중인, 평민 이렇게 써 놓은 것은 없다. 

노비는 있다. 노비는 호적에 노비라고 쓴다. 

하지만 양반도 중인도 평민도, 호적에는 그렇게 쓰지 않는다. 

직역이라는 것이 있지만 이건 양반, 중인, 평민과는 본질적으로 상관은 없다. 

직역이란 쉽게 말해 국가를 위해 이러이러한 일을 하고 있다는 것을 적어 놓는 것이다. 

조선시대에는 양반이라면 군역을 할 필요가 없었지만

명분상으로 보자면 양반이라 군역을 면제 받은 것이 아니라, 

과거 준비를 하는 사람에게 군역을 면제해주었을 뿐인 것이다. 

따지고 보면 발상 자체는 우리가 대학생들에게 군대를 연기해 주는 것과 다를 바가 없다. 

이것이 본말이 전도되어 군역을 면제받는 것이 양반 신분증처럼 되어버렸으니 

꼬리가 개를 흔든다는 것이 바로 이러한 것일 터다. 

호적에다가 양반이라고 한 줄 쓰고 나면 훨씬 간단해 질 일을

직역이라는 복잡한 절차를 거쳐가며 양반이라는 것을 간접적으로 파악하게 만들어 놓은 이유는

아무리 반상제가 세습되고 사실상의 신분제로서 고정된 것이라 해도 

조선은 어쨌건 명분상으로는 반상제가 아니라 양천제의 국가였기 때문이다. 

사대부란 세습되는 것이 아니라 능력에 따라 부과된 것이므로 

호적에 양반이라고 적을 수는 없는 것이다. 

보다 구체적으로 뭘 하는 사람인가를 적고, 

그 하는 일에 따라 양반을 간접적으로 구분하는 것이었으니, 

아무리 조선의 호적이 본질적으로 반상제에 따라 운영되고 있었다고 해도

그 바탕은 역시 양천제의 틀을 흔들 수가 없으니 

이리 복잡하게 호적을 만든 것일 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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