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문명사를 한마디로 요약하면 결국 지식의 역사이다.
인류의 축적된 지식과 정보를 어떻게 다음 세대에 물려줄것인가. 이것이야 말로 인류문명사의 정수이다.
어마어마한 건축물, 삐까뻔쩍한 유물도 문명을 대표할 수는 없고 결국 문명을 하나의 사물로 표현하자면 도서관에 쌓인 책 사진 하나로 설명이 가능할 것이다.
책의 혁명이라고 한다면 여러 단계가 있을 것이다. 문자의 발명도 필요했을 것이고, 필사, 그리고 인쇄술의 발달도 있다.
20세기 들어서 이루어진 전자조판과 인쇄도 그런 책 혁명의 와중에서 나온 결과물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책의 혁명 중 사람들이 소홀하기 쉬운 것이 바로 "제본"이다.
원래 발생 초창기의 책은 어떤 문명권이건 두루마기로 둘둘 감아 보관하는 데서 시작했다.
동양은 죽간이 그렇고, 종이가 발견된 후에도 두루마기 책은 상당히 오랫동안 만들어졌다. 일본의 에마키 같은 것이 바로 그런 예의 하나가 될 것이다.
이렇게 둘둘 말아 보관하던 책이 종이가 발명되면서 옆을 묶어 제책하는 방식으로 바뀌게 되었다.
책을 이런 방식으로 제책하면 안에 어떤 내용이 들어 있는지 쓱 보아 판단하는 "스크롤"이 비약적으로 편해진다.
종이책을 한 손에 잡고 다른 손으로 내용을 죽 찾아 넘기며 파악하는 "스크롤"은 전자책이 점점 일반화하는 오늘날에도 감히 따라가기 힘든 장점이다.
화면을 아래위로 움직이며 살펴보는 전자책이 종이책 같은 "원시적"인 책의 스크롤을 아직도 따라가지 못하는 것은 아이러니하다.
책을 한 손에 쥐고 그 내용을 다른 손으로 죽 훑어갈 때의 손맛과 효율성을 즐기자면 어쩌면 전자책은 그 종이의 질감과 스크롤의 편의성을 영영 따라가기 힘든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때도 있다.
그런면에서 문자의 발명이나 인쇄술의 발명 못지 않게 중요한 인류지성사의 사건 중 하나가 바로 책의 제본 기술의 발명이었다고 본다.
종이책 한 쪽 부분을 묶는 바인딩 기술의 발명이야 말로 소홀히 넘기기 쉬운 엄청난 역사적 사건의 하나가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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