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원군의 서원철폐는 단순히 서원에 대한 화풀이가 아니라,
동학혁명과 함께 우리나라 근대를 구분짓는 중요한 사건의 하나다.
서원이란 그 설립 기원은 차치하고
조선후기 급속도로 확대해간 배경에는 역시
그 뒤에는 향교가 있다.
서원이 급속도로 퍼져나가기 이전에는 잘 알다시피 우리나라는
향교가 중요한 향촌의 교육기관이었는데
여기에는 양반집 자제와 평민들이 함께 혼재하며 기거한 바
이들은 향교안에서도 같이 있지 않고 동재 서재로 나누어 기거하였다.
요즘 시골 항교를 가면 동재 서재가 있는데
여기서 한 쪽은 양반들 자제가 기거하고
다른 쪽은 평민 항교생들이 기거하고 있었다.

그런데 이놈들은 군역을 피해 들어온 놈들이라고 하고
양반들 자제가 튀어 나가 자기들끼리 따로 공부하기 시작한데가 바로
서원이다.
서원의 설립과 확산동기, 여러 가지 이야기 하지만
성장해 올라오는 유학 모칭자들로 부터 자신을 분리하려는 양반가의 욕망
이것이 가장 큰 동기였다는 것은 분명하다.
바로 이들의 명부가 조선후기, 청금록이다.
그래서 남아 있는 청금록 중에는 서원의 청금록인 경우가 많다.
우리나라 지금 남아 있는 청금록은 통틀어서 20개가 안되는 걸로 아는데,
청금록은 전국 방방곡곡 서원 마다 있었을 것인 바
이 많던 청금록은 다 어디갔을까?
대원군의 서원철폐 때 다 사라졌다고 본다.
서원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청금록이 존재했으니
서원의 소멸과 함께 바람과 함께 사라져 버린 것일 게다.
따지고 보면 대원군의 일갈에 떨어지는 나뭇잎처럼 사라져버릴 정도로 덧없는 것이 서원과 청금록이었을진대,
대원군의 서원철폐령의 배후에는
유학모칭자들의 응원이 없었다고 어찌 장담하리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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