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探古의 일필휘지

취허翠虛 성완成琬, 뛰어넘으려 했으나 끝내 잡힌 발목

by 세상의 모든 역사 2021. 1.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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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허翠虛 성완成琬(1639~?)이란 분이 있다. 조선 중기 분으로 시문에 능했고, 특히 조선통신사 일원으로 일본에 가서 문명을 떨치고 온 인물이다.

이 분의 종증손, 종현손이 조선 후기 문인이자 학자로 이름을 날린 청성 성대중, 연경재 성해응이다(한문학 전공자라면 익히 아시리라).

이 분의 글씨를 볼 기회가 있었다. 7언 배율排律 40운韵의 시를 지어 누군가에게 준 시고였는데, 상태가 나빠서 군데군데 탈락된 데가 많아 아쉬웠지만 글씨가 참으로 물 흐르듯 유려했다.

그런데 마지막 부분, 이름의 반이 날아가있었다. 반쪽이 된 이름이라...순간 이분의 처지가 확 떠올랐다. 과거에 급제해 벼슬도 하였건만, 이분은 서얼이었다.

조선 후기로 가면서 서얼의 출사에 사회가 보다 너그러워졌다지만, 아무래도 본인에게는 큰 컴플렉스 또는 스트레스였으리라. 적자嫡子가 아니라는 그 딱지가 알게 모르게 그를 얼마나 괴롭혔을까.

그런 그의 모습이 저 이름에 담겨 있다면 지나친 상상이겠지만, 어쩐지 바라보자면 슬퍼진다.

 

*** 台植補

 

조선 중기 때 인물인데 생몰년이 1639~? 라는 점이 벌써 이 사람 인색이 녹록치 아니한 최상위 계층이 아니었음을 웅변한다. 이 시대 유명한 사람으로 생몰년이 알려지지 않은 사람은 없다.

 

한국학중앙연구원이 제공하는 한국역대인물정보시스템에 그의 이름이 항목으로 오르긴 했다. 그에 의하면 아버지는 성후룡成後龍. 1666년(현종 7) 병오丙午 식년시式年試에 진사進士 2등 8위로 합격했다. 시로 이름이 있었다. 일찍이 제술관製述官으로 일본에 들어갔고 관직이 찰방에 이르렀다. 문집으로 《취허집翠虛集》이 있다. 

 

과거에 합격하고도 크게 성공하지 못한 이유는 저에 언급했듯이 서출인 까닭이다. 

***

성완 묘지명이 성해응 문집 <연경재전집> 권10에 있는데, 숭정 기묘 3월 28일에 태어나 경인 10월 22일에 졸했다고 하니 1639년에 태어나 1710년에 돌아가셨습니다. (필자 강민경 선생 보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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