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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저런

코트 안의 보조개 독사 임오경

by 세상의 모든 역사 2020. 4.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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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생순' 임오경 당선인 "경기와 달리 선거는 이기니 고생 시작" | 연합뉴스

'우생순' 임오경 당선인 "경기와 달리 선거는 이기니 고생 시작", 김동찬기자, 스포츠뉴스 (송고시간 2020-04-22 07:37)

www.yna.co.kr

 

21대 총선을 앞두고 애초 그가 영입 케이스로 현 집권여당에 들어간다 했을 적에 선수 출신이니, 나는 비례대표로 갈 줄 알았으되, 그닥 관심을 두지 못한 채 왜 임오경이라는 이름이 비례대표에 안 보이냐 순간 의아해하고 말았는데 조금전 우연히 이 기사를 보고는 아! 지역구 출마 당선했다는 사실을 알았다. 

 

제아무리 우생순 신화 주인공이라 해도, 그리고 코로나19라는 메가톤급 태풍이 집권여당에 유리했다 해도, 정치권과는 일정한 담을 쌓고 산 평생 경기인이 선거운동 하기도 못내 벅찼을 텐데, 그걸 뚫고서 당선되었다니 신기하기도 하다. 저는 잘 기억할지 모르나, 그 시대 핸드볼을 담당한 기자들은 저 이름을 잊을 수가 없다. 

 

 

1989년 정읍여고 시절 임오경

 

 

영화가 그린 우생순은 1992년 애틀랜타올림픽이 주인공이지만, 그때 나는 사회 초년생이었고 더구나 그 첫 직장 한국관광공사를 잠깐 다니다 때려치고 나와서 백수로 손가락 쫄쫄 빨던 시절이라, 생업에 쪼들린 내가 무에 그해 하계올림픽에 이렇다 할 감흥이 있었겠는가? 더구나 그 종목이 비인기 첨단인 핸드볼임에랴? 

 

그러다가 핸드볼을 보는 내 눈이 조금은 변했으니, 그 현장을 떠난지 20년이 넘는 지금도 핸드볼에 대한 내 관심은 각별하다 해 둔다. 그만큼 2년반이라는 비교적 짧은 기간의 체육부 기자생활이 준 핸드볼에 대한 인상이 강렬했으니, 이 종목은 한국사회 전반에서는 그를 바라보는 시각이 무시에 가까우나 메달권에 들어 아시안게임이나 올림픽이면 잠깐이나마 반짝하는 종목을 우리는 메달종목이라 부르면서 때로는 효자종목이라는 딱지를 붙이기도 한다. 

 

그 무렵에는 이른바 물 좋다는 종목은 선배들이 죄다 차지하고, 저와 같은 비인기 종목은 쫄따구들한테 배치할 때라, 나한테 주어진 종목들 면면을 보면 물론 축구나 야구 같은 주종목 말단을 걸치기도 했지만, 엄연히 나한테 주어진 주축은 핸드볼을 필두로, 럭비, 이미 인기 시들해진 복싱, 세팍타크로 등등이었으니, 뭐 안봐도 비됴 아닌가?

 

 

서울시청 감독시절 임오경

 

 

그런 사정에서 오직 핸드볼만이 주력 상품이니, 그에 집중할 수밖에 더 있겠으며, 그런 까닭에 여타 종목보다 그에 대한 관심이 유별날 수밖에 없는 처연한 사연이 있다. 

 

한데 내가 체육부에서 일한 94년 이래 96년까지 핸드볼은 사양길에 접어들었으니, 우생순이 상징하는 그런 황금시대도 서서히 막을 내리기 시작해, 그 주역들은 건재하다 하겠지만, 이미 그 주축의 주축인 임오경만 해도 여자핸드볼 선수로는 체력이 떨어지기 시작하는 시점이었고, 무엇보다 덴마크니 노르웨이니 독일이니 해서 기존 이 부문 절대 강자들 역시 호시탐탐 타도 한국을 외치며 절치부심하던 시기라, 그러는 와중에 맞은 1996년 애틀랜타 올림픽은 결승전에서 덴마크에 막혀 분루를 삼키고 말았으니, 저 무렵 대표단 주장으로서 눈물을 흘린 이가 바로 임오경이다. 

 

내가 핸드볼을 맡을 무렵 임은 이미 일본 실업팀에 진출한 마당이라, 당시 일본 여자핸드볼 수준은 우리한테는 한참이나 미치지 못했거니와, 가뜩이나 출중한 실력까지 장착했으니, 내 기억에 이즈미 라는 데로 진출한 그는 선수생활을 하는 와중에 감독까지 승진하는 경사가 있었다. 감독겸 선수였던 것이다. 

 

 

더불당 영입 당시 임오경

 

 

그는 독종이었다. 생김새도 무척이나 다부져서 악바리 같은 인상을 짙게 주는데, 내가 기억하는 선수시절 임오경도 그랬다. 아주 독종이었고, 아주 악바리였다. 선수단 속내로 들어가서는 이른바 1진 언니였는지는 알 수 없지만, 코트 안에 들어가면 저돌이었으니, 저돌이 뭔가? 멧돼지 아닌가? 그는 멧돼지 같았다. 

 

그런 그도 코트 밖에서는 적어도 취재진 앞에서는 언제나 쌩글쌩글이었으니, 요새 나이 들어 더 도드라져 보이긴 하는데 그때도 저 보조개 양쪽 볼태기에 말아올리고는 언제나 쌩글쌩글이었다. 올림픽 직전 그를 인터뷰한 적 있는데 그가 한 말이 아직도 귓가에 쟁쟁하다. "언론에서 부담 좀 주지 마세요" 라면서 쌩글쌩글 웃어댔다. 선머슴 스타일이라고 할까? 암튼 그랬다.

 

그가 코트를 누비던 시절, 좌우 쌍포로는 오성옥과 홍정호가 포진했는데, 이네들은 요새 뭐하는지 모르겠다. 이젠 할매 됐겠다. 

 

 

열받은 감독 임오경

 

 

암튼 코트 위의 독사 임오경이 이제는 금뱃지 달고 국회를 누비게 됐다. 상임위야 경력을 고려할 때 문화체육관광위가 될 법 하거니와, 경기인을 넘어 문화체육, 나아가 선량으로서 국민 혹은 시민을 위한 선정 잘 펼쳐주었으면 한다. 기존 선수 출신으로 국회의원이 없지는 않았지만, 비례대표라는 한계가 있었지만, 임오경은 당당한 지역구 당선자니 추진력이 배가할 것으로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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