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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를 비롯한 고려 이전 고중세사를 접근하는 첩경은 한 여자가 두 남자 이상한테서 씨를 받을 수 있다는 통념의 주입이다.
왜 자꾸 여자는 한 남자만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는가?
고려 시대만 해도 이런 여자가 쌔고쌨다.
심지어 아버지 여자를 취한 아들도 흔해 빠졌다.
이것만 이해하면 미해결로 치부한 역사의 비밀 상당수를 파헤친다.
외려 이혼과 재혼이 흔한 지금이 바로 신라사를 가장 잘 이해할 수 있는 시대다. (2017. 1. 16)
***
고대사를 공부하는 이유 중 하나가 현대의 상대화다.
절대적 가치 혹은 통념 혹은 상식의 파괴다.
현재를 상대화하고 객관화하는 일, 그것이 시급하다.
말로야 이리 떠드는데 하는 짓을 보면 당대에 사로잡혀 한 발짝 진전이 없다.
내가 역사를 볼수록 신이한 것은 그것이 끊임없이 옷을 갈아입는다는 사실이다.
지금이 외려 신라 고려보다 더 족내혼 사회라는 깨침도 그 과정 중 하나의 발견이라 해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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