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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말 이 땅에 전보가 들어왔을 때 모습을 상상해서 그려봤습니다.
띠띠 띠띠띠 뭘 누르기만 하면 저 멀리서 내용을 읽을 수 있다니 얼마나 놀라웠을까요.
20세기도 아니고 1890년대, 모스 부호 발명부터 불과 50년 만에 한글 모스 부호를 만들었단 사실이 지금은 더 놀랍죠.
*** Editor's note ***
위급한 소식이나 축하를 전할 때 한때 애용한 통신수단 전보電報가 역사 속으로 사라진단다. 그 대체물이 많은 요새 버텨낼 재간은 없었으리라.
KT가 하던 ‘115 전보’ 서비스가 2023년 12월 15일부로 끝난다.
전보는 1885년 9월 28일 한성과 인천간 최초의 전신시설이 개통하면서 이 땅에 상륙했다. 운영은 한성전보총국.
이후 한성~신의주, 한성~부산, 한성~원산 간 전국망이 잇따라 선보였으니 이는 통신혁명이었다. 파발 봉수를 퇴출했다.
전보는 글쓰기 혁명이기도 했다.
정해진 글자수까지는 기본료였지만 늘어나는 분량에는 그만큼 추가 금액이 붙은 까닭이다.
나로서는 화랑세기 또 하나의 신라 출간 직후 보내드린 졸저에 두 분한테서 받은 전보가 마지막이었으니 타계한 국민대 조동걸 선생과 서울대 경제학과(당시는 성균관대 재직시절이 아닌지 모르겠다) 이영훈 선생께 받은 전보가 마지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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