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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동훈의 사람, 질병, 그리고 역사

한국전쟁 당시 인민군 포로 심문 자료

by 초야잠필 2023. 4.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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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방 후 5년이 지난 상태에서 20대 한국인 문맹률 상황을 볼 수 있는 자료다. 

https://db.history.go.kr/item/powr/main.do

 

포로신문보고서 < 한국사데이터베이스

한국사데이터베이스현대사 포로신문보고서 ATIS Interrogation Reports 「포로신문보고서」는 한국 전쟁에 참전했던 미국 맥아더 사령관 예하의 「연합국번역통역국(ATIS)」이 1950년~1952년 사이 제작하

db.history.go.kr



당시 심문대상인 3천626명 중 무학이 724명, 소학교 졸업 이하가 1449명 (중퇴 포함)로 전체의 60-70프로를 차지한다.

소학교 졸업 이하는 대략 졸업과 중퇴가 반반 정도 되는 것 같다. 대학재학 이상은 193명이다. 

50년대 한국군 군대 입영보도를 보면 전체 40프로 정도가 문맹이라는 신문 보도가 있는데 무학자와 소학교 중퇴자가 문맹이 아니었나 한다. 

 

부산에 설치된 미8군 사령부 제1 포로수용소에서 포로들이 점심식사 준비를 하는 모습. 국제적십자위원회(ICRC) 제공



소학교 중퇴자가 문맹이 된 것은 30년대 말 일본어 전용교육의 영향이 있었다고 본다. 학교에서 일본어를 배우는 상태에서 해방이 되버리니 한글 문맹이 되버린것 아닐까 싶다. 

1950년대 20대가 이 정도였으니 1945년 당시 전체 문맹률이 70프로 이상은 당연할 듯 하다. 

다른 집안은 모르겠고 필자 집안의 경우, 해방 이후에 초등교육에 진입한 세대와 그 이전 세대의 학력차가 상당한데 이 자료의 인민군 포로의 경우 30년대 중반에 초등교육에 진입한 세대다. 

이 자료에는 소수의 미군 자료도 섞여 있다고 하는데 귀찮아서 따로 챙겨 내지 않았다. 

 

*** 편집자주 ***

저 통계는 실은 남성 성인 군인층 대상이라는 점을 유념해야 한다.

동나이대 여성 문맹률은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높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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