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는 변한 것이 없다.
늑대로 살아갈 때 우두머리를 따라가는 것이나, 사람과 같이 살면서 사람을 따라다니는 것이나 달라진 것이 없다는 말이다.
늑대 무리 (wolf pack)로 살아갈 때도 수컷 알파에 대해 나머지 늑대들은 그렇게 충성한다.
하지만 이는 동료 최강자에 대한 복종일 뿐 알파를 자신의 주인이라 생각할 리가 없다.
살아 남기 위해서는 알파에 충성하고 알파는 반대급부로 나머지 늑대를 보호할 뿐이다.
똑같은 방식으로 개는 사람과 같이 사는 것이다. 개는 늑대시절과 비교해서 달라진 것이 없다.
개는 사람에 충성하지만 이는 사람이 개를 보호하는 것을 기대하는 행위이다.
굳이 따지자면 개가 기대하는 사람과의 관계는 유럽봉건제 하의 쌍무적인 관계에 가깝다.
역사적으로 달라진 것은 사람이 개를 보는 시각이다.
사람들은 개를 자신들이 만들어 놓은 사회구조를 투영하여 이해한다.
인간이 아직 제대로 된 계급사회를 만들기 이전부터 개는 사람과 함께 살았다.
이때는 개와 인간의 관계가 주인과 종의 관계와는 달랐을 것이다. 신석기시대에는 개를 먹지 않고, 제대로 매장한 예가 많은 것이 그 예이다.
사람이 계급사회를 만들고 군주와 신하, 주인과 종의 관계가 만들어 지면서 개와 사람의 관계도 변화하기 시작했다.
사람이 개를 신하, 종처럼 이해하기 시작한 것이다.
인간은 개 앞에서 스스로 주인을 자처하였다. 이는 노예주와 노예의 관계를 투영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인류문명이 후기로 오면서 사람과 개의 관계는 한층 더 변하기 시작하였다.
인간의 사회는 여전히 계급사회이지만, 군주와 주인이 스스로를 강하게 내세우지 못하는 것처럼, 인간과 개의 관계도 단순한 "주인과 종"에서 "반려동물"이라던가 "친구"라던가 하는 개념으로 바뀌기 시작했다.
물론 이 또한 사람들 스스로 자신들의 생각을 투영할 뿐이며 그렇다고 해서 개가 바뀐 것은 아무 것도 없다.
여전히 생물학적으로는 늑대의 아종일 뿐인 개는 항상 그 자리에 있었다. 과거에도 사람을 알파로 따라다니는 무리의 하위에 위치한 구성원이었으며 지금도 그렇고, 미래에도 그럴 것이다.
개는 사람을 걸어다니는 늑대로 보고 있는데 우리가 그것을 모를 뿐이다.
'신동훈의 사람, 질병, 그리고 역사' 카테고리의 다른 글
소위 "근대화"에 대하여 (0) | 2023.04.01 |
---|---|
한국전쟁 당시 인민군 포로 심문 자료 (0) | 2023.04.01 |
주인을 보는 눈빛인가? (0) | 2023.03.30 |
교육열이 "망국병"이라는데 대해 (0) | 2023.03.30 |
1987년 왜 거리마다 대학생이 가득했는가 (0) | 2023.03.30 |
댓글